[중국]한중관계
- 최초 등록일
- 2006.06.13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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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복자국가 중국에 대해서쓴 레포트 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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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가장 이슈가 되어오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중국은 1949년 10월 정권을 수립한 이후 모든 친미국가를 적대국가로 간주하는 외교정책을 고수해왔다. 그러므로 한국과의 외교는 단절되었으며, 북한 위주로 한반도 정책을 결정했다. 1973년 한국은 대 공산권 문호개방을 원칙으로 하는 6·23선언을 발표하여 중국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1974년 1월 한일대륙붕협정을 체결하는 등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78년 말 중국 제11기 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 개혁실용주의 노선과 대외개방정책이 적극 추진되자 중국의 대외정책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어 1979년 1월 덩샤오핑은 한국과의 우호관계조성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그해 7월 구체적으로 한국과 체육 교류의 용의가 있음을 나타냈다. 1980년 4월 대한민국 올림픽 위원회(KOC)에 대해 언급했다. 1982년 8월에는 베이징에서 개최된 세계 식량위원회(WFP) 세미나에 한국이 참가했다.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최초의 접촉은 1983년 5월 중국의 민항기가 춘천 미군기지에 불시착하면서 이루어졌다. 중국은 중국 당국 관계자를 파견하여 사태수습을 위한 교섭을 벌였다. 이는 국제민항기구 또는 제3국을 통한 간접적인 해결방법을 무시한 것으로, 중국 측은 이때 대한민국이라는 정식국호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중국과 한국의 교류는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미 세계는 협력 동반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봐도 과연이 아니다.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98년 11월 김 대중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에서 "21세기 한. 중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키로 합의 하며 처음 나온 말이며 2000년 10월 주룽지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확대 발전시키기로 합의 되었다. 98.8월 조 성태 국방장관 방중 및 2000.1월 중국 국방부장의 방한 그리고 2001.12 김 동선 국방장관 방중으로 군사,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도 심화 발전되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발전해야하는 외교관계에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불법복제는 세계에서 알아줄 정도로 심각하다. 일명 짝뚱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 것이든지 돈이 된다하면 다 불법으로 복제해서 판다. 영화, 드라마, 만화영화, 음악, 클래식, 오락, 컴퓨터프로그램, 전자도서 등 CD로 만들어진 제품은 다 있다. 이걸 盜盤(따오반)이라 부르는데 일본 것도 만화 드라마 게임 할 것 없이 복제되어 파는데 좀 인기가 있던 것이라면 아마 하루 만에 나올 수 있을 정도다. 가격은 DVD가 장당 10위엔 가량, VCR 은 영화 한편이 2장에 들어가는 관계로 12위엔 정도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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