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조선시대 신분제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06.04.04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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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전기의 신분구조를 대략적으로 구분하고 이어서 양란 이후에 각 신분계층의 변화의 양상을 다루었다.
목차
1. 서언
2. 조선의 전기 신분구조
1) 양반 2) 중인
3) 양인 4) 천인
3. 양란 이후 신분제의 변화
1) 양반 인구의 증가 2) 중인의 성장
3) 서민의 경제적 성장 4) 노비정책의 변화
4. 결언
본문내용
1. 서언
조선시대 신분층의 구조는 정치제도와 연계되어 구성되어 있었다. 정치체제와 연계된 양반은 관제상 양반인 문반·무반을 구성하여 관료를 독점하고 있었던 자들로서, 유교정치 이념상 職役的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유교적 명분과 유학으로 무장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조선 왕조의 신분구조는 양반관제가 사회신분의 명칭으로 의미가 바뀌는데서 알 수 있듯이 직역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면서 사회통념과 혼합되어 있었다. 양반이 최고의 신분층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좋은 직역에 종사하는 사회신분층이라는 의미이고, 이어 중인·양인·천민층은 그 직역이 고된 것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조선사회의 신분구성은 직역의 변동에 따라 변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조선 초기 기본 신분구조인 양반·중인·양인·천민에 대해 알아보고 양난 이후 이러한 기본적인 신분질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겠다.
2. 조선의 전기 신분구조
조선왕조의 신분제는 신분직역제로 함축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남자는 원칙적으로 신분적 지위에 맞는 직역이 각 개인에게 주어지고, 이에 따른 권리ㆍ의무상의 차등이 법제 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분적 지위는 직역의 여하에 따라 파악할 수 있었다. 직역은 신분을 판정하는 유력한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장적에 기재된 직역을 통해서 조선의 신분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양인과 천인으로 신분이 구분되어서 양인은 역과 세를 부담하고 천인은 이것들을 부담하지 않았다. 양인이 역과 세를 부담하는 대신 그들은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고 천인은 관직진출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이르면서 양반, 중인, 상민, 노비의 격차는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1) 양반
양반은 관료직을 독점하려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관행을 통해서 그들의 신분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이미 결속하고 있었던 통혼권의 관행을 통해 스스로 사회신분층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최고 신분층이 되어 스스로 배타적으로 신분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사회관행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결속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유교 교육과 과거제 운영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여러 조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경제력을 갖춘 국가에서 그들의 교육 기회를 지원토록 제도화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양반관료들이 밀집한 서울에선 사부학당을 설립하여 과거 합격률을 높였고 지방에 거주하는 양반들도 서원을 설립하여 과거 합격률을 높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