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석유파동과 유가급등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12.22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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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론 본론 결론 형식으로 석유파동과 유가급등의
문제점등을 지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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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본론
1)제1,2차 석유파동
2)석유파동의 이유
3)석유파동 및 유가급등의 피해
4)우리나라의 석유 확보 현황
5)석유의 대체에너지 (수소에너지)
3.결론
본문내용
1. 제1,2차 석유파동
- 제1차 석유파동으로 인하여 서방세계에서는 ‘에너지 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는데, OPEC의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은 다시 1974년 1월 1일을 기해 배럴당 5.119달러에서 11.651달러로 인상하였다. 석유에 기간산업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서방세계의 경제는 석유부족으로 인한 제품생산의 부족과 제품가격의 상승으로 세계적인 불황과 인플레이션을 만연시켰다. 이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진국 및 후진국을 막론하고 경제성장의 둔화를 가져왔다. 외교면에서는 서방세계로 하여금 이제까지의 친이스라엘에서 친아랍 중동정책으로 기울게 하였으며, 한편 OPEC는 국제석유자본(Oil Major)이 독점하고 있던 원유가격의 결정권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자원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제2차 석유파동의 여파는 제1차 석유파동과 마찬가지로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즉,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은 1978년의 4.0%에서 1979년에는 2.9%로 낮아졌다. 물가면에서는 선진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0.3%를 기록하였으며, 개발도상국의 경우 32.0%의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다. 또 석유수입국의 경상수지는 원유수입의 부담 증가로 크게 악화되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제국의 경상수지는 1978년의 116억 달러 흑자에서 1979년 322억 달러의 적자로 반전되었고, 비산유개발도상국은 적자의 폭이 444억 달러에서 505억 달러로 확대되었다. 반면 OPEC 산유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1978년의 240억 달러에서 79년에는 770억 달러로 급증하였다. 한국의 경제는 제1차 석유파동 때에 다른 국가에 비해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으나(1974년과 1975년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8.0%와 7.1%), 제2차 석유파동 때는 극심한 피해를 받았다(1979년과 1980년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6.4%와 -5.7%). 이는 제1차 석유파동 이후 경제 체질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중화학공업 중심의 확대정책에 중점을 둔 것에 기인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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