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역사]실학에서 성호학파와 북학파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5.11.20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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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호학파와 북학파를 살펴보고 그 같은점과 다른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목차
Ⅰ. 실학(實學)의 개념
Ⅱ. 성호학파(星湖學派)
1. 이익
2. 안정복
Ⅲ. 북학파(北學派)
1. 홍대용
2. 박지원
3. 박제가
Ⅳ. 성호학파와 북학파의 비교
본문내용
1. 홍대용
그는 자신의 사상적 전개가 기존 체계의 권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비판하여 극 복하는 입장에 서 있음을 『의산문답』에서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의산문답』은 당시 통 속적인 유학자나 기존의 관념에 사로잡힌 성리학자를 허자로 설정하고 새로운 사고체계를 구성하는 실옹을 통하여 당시의 사상적 타락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주자학의 체계에만 사 로잡힌 경학의 폐쇄적인 태도를 비판하면서 주자학도 객관적인 평가의 대상에로 끌어내릴 것을 요구하였다. 한편 홍대용은 자연관이 인간중심적이나 지구중심적인 사고를 극복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사회관도 특정 신분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의식을 벗어나려 하였 다. 또한 역사관도 중국 중심의 화이론을 벗어나는 역외춘추론을 주장하여 국가의 상대적 자기중심성을 인정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향방의식을 극복하는 자주의식의 근거를 제기하였 다.
2. 박지원
박지원은 소설의 문학적 창작을 통한 현실의식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 정신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소설이 내포한 현실비판의 예리함과 더불어 그 시대의 통속적 관념체계나 신분적 권위에 대한 공격을 통해 그가 지닌 사회개혁 의지를 내비추었 다. 그것은 그의 문학정신이 보여주는바 존고와 모방을 거부하는 탈고적 현실의식에서 엿 볼 수 있다. 그는 44세에 열하를 다녀오면서 청조 문물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청조인과의 담론을 통하여 북학파의 학문적 자세를 폭넓게 제시해 주었다. 그는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 에서 청조의 문물과 역사적 상황을 인식하게 된다. 또 청조의 한인통치수단이 주자학에 의 한 교묘한 방법인 것을 인식함으로 당시 주자학의 폐해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3. 박제가
박제가는 홍대용과 박지원의 학풍을 계승하여 북학론을 정립시켰다. 그는 북학파의 기본 적 관심인 對 淸朝 자세의 재정립을 주장하고 이용후생론을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제시함으 로서 북학론의 학문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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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제동,『조선시대사론강』, 교문사, 1995.
최완기,『조선시대사의 이해』, 느티나무, 1992.
유형원 외, 강만길 외 역,『한국의 실학사상』, 삼성출판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