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사] 퇴계이황의 교육사상
- 최초 등록일
- 2005.05.08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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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緖論)
2.본론(本論)
이황의 생애(生涯)
이황의 사상(思想)
이황의 교육방법(敎育方法)
퇴계학의 현대적 과제
교훈
3.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2.본론(本論)
이황의 생애(生涯)
퇴계의 성(姓)은 이, 이름은 황(李滉 : 1501~1570),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등이며, 관향(貫鄕)은 진보(眞寶)이다. 퇴계는 1501년11월 25일 경상북도(慶尙北道) 안동(安東)시(市) 도(陶)산(山)면(面) 온혜(溫惠)리(里) 에서 태어났다. 퇴계는 어린시절(時節)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퇴계는 자신(自身)의 인생(人生)에 가장 큰 영향(影響)을 미친 사람이 자신(自身)의 어머니라 하였고, 퇴계의 어머니는 과부(寡婦)의 자식(子息)은 더욱 조신(操身)하여야 한다고 가훈(家訓)을 삼고 엄하게 7남매(男妹)를 훈육(訓育)하셨다.
퇴계의 생애는 3시기(時期)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 시기는 초년(初年)기(期)로 출생(出生) 때부터 33세 때 까지 유교(遺敎)경전(經傳)을 연구(硏究)하는데 열중(熱中)하였던 수학기(修學期)이다. 12세 때부터 숙부(叔父)에게 <논어(論語)>를 배웠으며 숙부가 별세(別世)하신 후(後)부터는 거의 독학(獨學)을 하였다. 20대(代)에는 건강(健康)을 해칠 정도(程度)로 <주역(周易)>에 몰두(沒頭)하여 평생(平生) 동안 몸이 마르고 쇠약(衰弱)해지는 병(病)에 시달리게 되었다. 두 번째 시기(時期)는 중년(中年)기(期)로 34세에 과거(過去)에 급제(及第)하여 벼슬길에 나가면서부터 49세 때 풍기군수(豊基郡守)
를 사직(辭職)하고 귀향(歸鄕)할 때까지의 시기로 대체로 벼슬살이를 하였다. 관료(官僚) 생활(生活)을 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고 학문(學文)연구(硏究)에 몰두하였다. 46세 때 벼슬에서 물러날 뜻을 굳히고 고향(故鄕)으로 돌아와 양진암(養眞庵)을 짓고 호를 퇴계라 하였다.
참고 자료
"이퇴계의 실행유학" 권오봉 저 1997년 학사원
"퇴계의 삶과 철학" 금장태 저 1998년 서울대출판부
"퇴계선집" 윤사순 역주 1993년 현암사
"퇴계 가훈으로 배우는 인생의 소중한 지혜" 최승범 풀어 엮음 2002년 새론북스
http://my.dreamwiz.com/ohjs7/iw/iw1st.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