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문학연구
- 최초 등록일
- 2004.10.26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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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들어가기
▶ 감상 Ⅰ : 묏버들 갈 것거 - 홍랑
▶ 감상 Ⅱ : 이화우 흣릴 제 - 매창
▶ 감상 Ⅲ : 솔이 솔이라 니 - 송이
▶ 감상 Ⅳ : 당우를 어제 본 듯
◈ 나오기
※ 참고 : 기녀 문학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기녀제도는 고구려의 유녀에서 비롯되어 관료체제가 갖추어짐에 따라 관기가 전국 관아에 배치됨으로써 정착되었다. 따라서 기녀의 역사가 천 년에 가까운 셈이다. ꡐ해어화ꡑ(解語花), 말하자면 ꡐ말을 알아듣는 꽃ꡑ. 그들은 ꡒ슬프고 가련한ꡓ 천민이었다. 한 여사당의 노래인 <여사당 자탄가> ꡒ한산 세모시로 치마저고리 예쁘게 차려 입고/안성 청룡사로 줄타기 놀이 가세/이 내 손은 문고리인가/이놈도 잡고 저놈도 잡네/이 내 입은 술잔인가/이놈도 핥고 저놈도 핥네/이 내 배는 나룻배인가/이놈도 타고 저놈도 타네.ꡓ (<조선해어화사> 중에서)
는 이들의 신세를 잘 보여준다.
흔히 기녀라고 하면 남자들의 노리개 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기녀시조’에 대해 연구하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던 인물 중 하나였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신분은 비록 천했지만 그 역할에 있어서는 중요한 위치에서 필요악적으로 존재했던 기녀. 과연 향락만이 그들의 전부였던가. 그들은 높은 식견과 그리고 풍모와 재능으로 춤, 노래, 시, 그림 등을 예술로 승화시켜 오늘날까지 숭앙을 받고 있다. 남성중심의 조선시대에 자유분방했던 기녀들은 서민들의 대변인 역할을 솔직히 해왔고, 우리는 또 그들을 통해 서민의 소리와 정경을 엿볼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슬픈 이슬 머금고 아리따운 꽃으로 자라 그 꽃을 찾아 날아든 나비와 사랑을 나누고 어느새 아름다운 사랑으로 피었다가 그리움으로 지고 또는 남성들의 노리개와 배신의 되풀이 속에 눈물 흘리고... 그렇지만 예술적 재능으로 한 송이 꽃으로 다시 피기까지... 이렇게 오늘날까지 자신의 역할을 잘 이끌어 온 기생들을 재조명하여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애환이 담긴 그들의 시를 재조명하고 싶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