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리] 소백산맥의 고개(한국지리)
- 최초 등록일
- 2004.06.15
- 최종 저작일
- 2004.06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소백산맥의 고개마다 특징과 유래가 소개되어있고,
고개의 그림도 삽입되어 있습니다.
목차
※소백산맥의 고개※
1.죽령
2.조령
3.이화령
4.추풍령
5.육십령
6.팔량치
본문내용
이 고개가 언제 뚫렸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동국여지승람』의 「연풍편」과 「문경편」에 다같이 "속칭 초점(草岾)이라 한다"고 했고 『고려사』「지리지」에 "문경의 북쪽에 주흘산이 있고 험하게 막힌 곳이 세 곳이 있으니 초점, 이화현(伊火峴), 관갑천(串岬遷)"이라 한 것으로 보아 고려 때부터 개통된 듯하며 조령이라고는 조선왕조 때부터 불리게 된 것 같다. 이병도 주해의 『삼국사기』에서는 계립령을 조령이라고 주석을 달고 있지만 계립령이 조령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전설에는 태종이 처음 새재의 길을 닦았다고 하나, 남북으로 18리에 이르는 석성을 쌓고 조령관·오곡관(烏谷關)·주흘관(主屹關)의 세 관문을 세운 것은 숙종이다. 한가지 의문은 지금 찻길로 이용되고 있는 이『여지승람』등의 기록에 보건대 예부터 있었는데도 새재만이 유일한 통로로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백두대간(백두산∼지리산)의 등뼈를 이룬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이어져 충북과 도계를 이룬 천험의 요새인 조령(鳥嶺)은 새재계곡을 따라 제3관문까지 이어진다. 조선시대부터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가장 큰 대로(영남대로)로서 '영남'이란 명칭도 조령의 남쪽지방이란 뜻이다. 조령의 다른 이름인 '새재'는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 또는 억새풀이 많은 고개로 풀이되고 있으며 '고려사'에는 초점(草岾),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