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거시중국사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4.01.12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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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안은 중국 역사상 11개 왕조의 서울이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곳이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이곳이 누리고 있는 명성은 그 어떤 정치적인 중심지보다도 월등히 높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고대의 건축물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 폐허 속에 옛날의 웅장한 기상만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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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안은 중국 역사상 11개 왕조의 서울이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곳이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이곳이 누리고 있는 명성은 그 어떤 정치적인 중심지보다도 월등히 높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고대의 건축물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 폐허 속에 옛날의 웅장한 기상만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역사서의 기록에 의한 최초의 왕조인 하왕조의 존재에 대하여 전설은 많으나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고고학적인 실증이 없어 그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 왕조가 만약 확실히 존재하였다면 적어도 발굴된 유물에서 문자가 나타났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하왕조가 실재로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중국의 문자가 기원전 2000년경에 처음으로 생겼지만, 최초의 문자는 죽간이나 비단 천 따위에 쓰였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이미 마멸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지만 여전히 정설이 될 수는 없다.
현재로서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중국역사의 시작은 기원전 약 1600년경의 은왕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왕조의 두 서울과 10여 곳의 왕릉이 이미 발굴되어 문자가 확실히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짐승의 뼈에 새겨져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서 출토된 갑골문의 조각들은 그 수가 10만을 헤아린다. 당초 갑골은 굿이나 점복에 사용했던 것으로 현존하는 갑골은 은왕조의 사관이 영구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다시 만든 것이다. 갑골의 대량 출토는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에서 처음으로 국가 규모를 갖춘 은왕조가 장차 사람들을 탄복시킬 수 있는 일련의 고급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은왕조의 유적지는 역사적으로 `관동`이라고 일컬어지는 하남성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안 일대의 황토고원과 동서로 연결되어 그 서쪽 축을 이루고 있다.
맹자는 전통적인 정치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공자를 뛰어넘는다고 볼 수 있으나 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제자에게서 배웠다고 전해지고 있어 중국의 황제와 문인들로부터 공자 다음으로 두 번째의 성인이라는 뜻에서 `아성`으로 더 받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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