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상과 예술] 한일교류사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3.12.21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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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참고로 A+ 받은 과목입니다..^^
목차
∑한일교류의 시작
∑'임나일본부' 설
∑4세기의 가야인의 이주
∑아스카 문화와 백제
∑임진왜란
∑이에야스에 의한 '교린' 회복
∑메이지유신 그 후
∑조선-국권의 상실
∑'황민화' 교육
∑병참기지로서의 조선
∑독립과 재일(在日)조선인
∑맺음말
본문내용
∑'임나일본부' 설
일본인들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비문과 칠지도의 명문의 해석을 가지고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있다. '임나일본부' 설이란 나라 분지에서 성립한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에 규슈 북부로 진출하였고 다시 대군을 한반도에 보내 가야 지방을 점령한 후 2세기에 걸쳐 이 지방을 지배하였다는 설이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었던 부분이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서술하겠다.
4C의 일본열도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작은 단서들을 조합하여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나일본부'설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광개토대왕의 비문의 경우 원 비문의 훼손이 심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부분의 글자를 알아보기 힘든데 일본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입장에 맞춰 멋대로 해석했다. 더구나 나중에 비문에 석회를 덧발랐기 때문에 그 비문에 적혀있는 글자조차도 의심스럽다. 비면을 처음으로 조사한 일본인인 이마니시 류 조차도 '이 비문을 사료로 사(史)를 고증하려고 하는 사람은 깊은 경계를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칠지도 역시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백제왕이 영원한 복속을 맹세하는 기사도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칼에 적힌 연도 역시 자신들의 편의대로 해석하여 실제 이치에는 맞지 않는다. 연도를 원래대로 해석하면 일본의 주장은 맞지 않는다. 그리고 비문이나 칼의 해석뿐만 아니라 '임나일본부'설은 기본적인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우선 야마토 정권이 철정과 선진 기술자를 획득하기 위해서 한반도로 출병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철이 풍부해서 선진 철기문화와 무기를 가지고 있는 신라와 가야의 군대를 어떻게 뒤쳐진 야마토군이 격파해서 2세기동안이나 가야 지방을 지배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일본 학계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