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본 한일교류사
- 최초 등록일
- 2006.12.21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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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왕조실록을 직접 읽어가면서 굵직한 조선시대의 한일교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주관적인견해를 덧붙였습니다.
목차
1. 들어 가는 말 - 한일교류의 역사
2-1. 조선 초기의 한일 교류
2-2. 조선 중기의 한일 교류
2-3 조선후기의 한일교류
3. 조선의 한일교류사에 대한 아쉬움
4 . 맺음말
본문내용
1. 들어 가는 말 - 한일교류의 역사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적 교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그것의 기원은 통시적으로 꽤 오랜 시일을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의 한반도는 하나의 민족의 영토였으나 하나의 국가체제가 아니라 여러 개의 분립된 국가들로 되어 있었으며, 일본 역시 스스로를 ‘일본’이라 명명하지는 않고 하나의 공동체 집단으로서만 존재하였었다. 당시 우리의 농경문화를 전수받아 생활문화를 싹 틔운 일본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거론할 때면 반드시 등장하는 타국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일본이 우리 역사의 대외적 측면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유난히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정신적, 물질적인 흔적이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처럼 깊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한일간 교류의 역사는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기에 그 내용은 꽤 다양한 측면에서 방대한 산물을 창출해내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게 되면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 오던 한일간의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어 본격화되는데, 그것은 양 국 모두 가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체계적인 정치제도와 발전된 문물로 국가의 성숙기에 진입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한일교류가 역사상 가장 활발했던 조선시대라는 역사적 범위 내에서 두 나라의 교류의 흔적을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사료를 통해 직접 살펴보고, 그것에 대한 역사적 의의나 해석을 통해 이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피력해보고자 한다.
2-1. 조선 초기의 한일 교류
조선 초기의 한일교류의 역사는 세종시대 대마도를 정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대마도의 왜인들은 섬의 특수적인 이유 때문에 조선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혜택을 얻어갔지만, 때로는 이 교우 관계인 조선을 노략질의 본거지로 삼아 빈번한 침입을 일삼아 왔다. 이러한 왜적의 침입에 대항하여 세종은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토록 하였고, 이 결과 왜구의 침략이 잦아들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왜구는 고개를 들어 수 차례 침입을 하게 되고, 이러한 왜구에 강경한 대응으로서 조정은 조선과 왜 사이의 외교적 교류를 완벽히 금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대마도의 왜구는 그 동안 조선으로부터 얻은 혜택의 수혜가 중단되게 되고 그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자 사죄를 하며 통상을 요청하게 된다.
참고 자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