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업적과 인조의 친명사대외교
- 최초 등록일
- 2016.12.28
- 최종 저작일
-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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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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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광해군의 업적
2. 인조의 친명사대외교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의 시기는 조선왕조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재편성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에서 훈구파로 불렸던 구 정치세력이 쇠퇴하고 선조가 즉위하면서 그 동안 지방의 향촌에서 세력을 키웠던 사림세력이 중앙계로 진출하고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명나라의 국력이 약해졌고 중국의 청에게 지배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조선의 외교정책은 명분과 실리라는 상반된 입장에서 대립될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은 국내외의 복잡한 정치 상황에 대응하여 자신의 확고한 정치책을 펼치다 반대 세력의 반정으로 인하여 왕권에서 물러나게 된다. 반대세력에 의해 광해군의 치적은 은폐되고 수정되어 역사적 사건이 왜곡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역사가들에 의해 광해군은 중립외교정책을 펼친 군주로 재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고, 18세의 나이에 세자에 책봉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분조를 이끌며 발군의 활약을 펼친 광해군은 조정과 백성에게 신임의 대상이 되었다.
참고 자료
1998, 김갑천, ‘인조조의 정치적 “적실” 지향성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박사학위논문
1988, 김용욱, ‘조선시대 정치체계: 체계유지와 붕괴’, 원광대학교 출판국
1985, 이태진, ‘조선후기의 정치와 군영제 변천’, 한국연구원
1999, 한명기, ‘인조반정 이후 병자호란 이전의 대명관계’, 역사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