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제빵-우리나라 제과제빵의 발전과정
- 최초 등록일
- 2013.06.19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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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도입기
2. 유년기
3. 소년기
4. 청년기
5. 성년기
6. 정착기
본문내용
우리나라에서의 빵의 전래는 구한말에 비밀리에 입국한 선교사에 의해 이루어 졌으나 확실한 연대나 선교사의 이름은 알 수 없다. 단지 1834년에 프랑스인으로 모방 신부와 사스땅이, 1856년 같은 프랑스 신부 베르뇌(S. F. Berneux)가 입국한 사실을 참고로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성교사들이 숯불을 피운 후에 떡시루를 엎고 그 위에 빵반죽을 올려놓은 다음 오이 자배기(주; 둥글납작하고 아가리가 쩍 벌어진 질그릇)로 덮어 화로를 만들어 빵을 구웠다. 제품의 모양이 마치 우랑과 같다고 하여 우랑떡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최초로 소개된 빵과자로 알려져 있다. 당시 빵은 면포라 불렀고, 카스테라는 눈처럼 희다고 하여 설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 1918년에 러시아 공관이 세워졌고, 워베르 러시아 공관의 처제인 손탁이 공관 앞에서 정동구락부를 개설하여 차류와 양식을 판매하였다. 그녀는 처음에는 양과자를 만들어 민비에게 선사하여 환심을 산 뒤 민비에게 서양요리 강습도 해 주고 손수 요리도 만들어 바쳤다.
당시 고종은 양식을 매우 즐긴 것으로 유명한데 한일합방 전에 이미 양식파티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32살의 올드미스인 손탁은 고종의 양식시중으로 선망을 얻어 마침내는 정동의 왕실 부속건물을 기증받아 황실의 양물 일체를 취급하는 어용계( 御用係)를 맡아보게 되었다.
그 후 제과업의 싹을 틔우게 되는 유년기는 한일합방 이후 일본을 통해 그들의 화과자와 양과자가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일본인들은 알사탕과 막과자를 진고개에 팔았다고 하며, 찹쌀모찌는 이미 인천 등지에서 반매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과자업들은 차츰 남대문 시장에 모여 도매상을 열었고, 소배상들은 주로 종로에 운집해 있었다. 당시 대표적인 과자로는 개당 1전하는 접과자와 생과자, 알사탕 등이 있었으며 도매상들이 이를 만들어 소규모 구멍가게나 지방업자들에게 공급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제과업의 초창기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