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초기시 비평
- 최초 등록일
- 2012.05.27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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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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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920년대의 시대상황과 민요시 태동
2. 김억의 격조시론
3. 주요한, 자유시에서 민요시로- 「노래를 지으시려는 이에게」를 중심으로
4. 김소월, 민요시의 승화와 극복-「시혼」을 중심으로
5. 맺음말
본문내용
5. 맺음말
1920년대 민요시는 개별 시인들의 민요 의식과 민요시론의 다양성, 그리고 현실대응태도의 차이로 그 성격 역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김억과 주요한은 자유시 창작을 통한 반성의 결과, 근대시의 새로운 방향으로 민요시를 지향하게 된다. 이들의 민요시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소극적 자세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당시의 민족 및 민중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하였다. 김억은 음율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주요한은 음율에 있어서는 김억보다 여유로왔으나 민족 정서에 구체적 내용에는 침묵함으로서 그 한계를 보여주었다. 주요한의 시에서는 대중의 현실 문제가 다루어진 예는 거의 없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그의 시가 확보하고 있어야할 긴장관계의 가능성 하나를 배제한 꼴이 되었다. 그리하여 주요한의 민요적 서정시는 한갓 부드럽고 아름다운 노래에 그쳤을 뿐이다.
이에 비해 김소월은 「님의 노래」에서 보여지듯 민요적 서정시에 형이상이 차원을 구축하여 의식상 평면성을 지양, 극복하였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가 정형시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김억과 달리 운율과 해조를 자아내기 위해 보다 많이 의미구조의 조직에 의거하여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시가 가지는 음영의 차원이 단순히 허무주의측면에서 해석할 것인지 혹은 식민지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가 민요시의 승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1920년대 민요 시인들은 자유시나 산문시가 아닌 김춘수가 ‘이상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정형시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초기 한국 근대시의 형태상의 난맥상을 지양, 극복하고자 한 시도였다. 1920년대 시단은 서구 시에 심취해 있었고 시 창작 또한 당연히 서구 지향의 자유시에 몰두하게 된다. 민요시는 이러한 문학적 흐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어 우리 문학적 전통에 대한 재인식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민요시는 한국의 근대시가 단순히 서구 문학의 영향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이식문학론을 극복하는 데에 그 기여한 바가 크다.
이 당시 시인들이 접했던 서구적 낭만주의는 그것을 하나의 문학 이론으로 접했다기 보다는 낭만주의가 가지고 있는 근본이념 내지는 정신적 배경으로서 개성과 자아를 존중하고 극대화하려는 개인주의의 이념을 작품과 문학론 등을 통하여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구에서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출발했던 것과 같이 김억등의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있어서 조선조는 개성과 자아의 말살, 그러므로 보수적인 이념의 시대로서 거부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구의 낭만주의를 그대로 이식하지 않고 민요적 성격의 시와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는 시를 창작했던 것이다. 이들은 또한 서구적 자유시의 회의로 전통적인 민요조의 정형을 지향했다는 점에서도 한국의 새로운 시형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을 하였다는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