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극사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1.11.09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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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나라 근대극의 흐름
1. 최초의 서구식 극장과 <은세계>
1920년 12월에 최초로「협률사(協律社)라는 서구식 극장에서〈소춘대 유희(笑春臺游戱)〉라는 연희가 상연되었다.「협률사는 궁내부에 설치되었으니 오늘날 국립 극장격이라 하겠다. 이는 본래 고종 황제의 칭경 예식(稱慶禮式)을 위해 건축된 것이나 콜레라의 유행, 영친왕의 변환 및 흉년이 잇달아 칭경 예식은 계속 연기되었다. 그 동안 여기서 판소리와 광대와 기생들이 각종 연희가 상연되어 풍속을 해친다는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1906년 4월 이필화의「협률사」폐지 상소문을 계기로「협률사」는 없어지고 만다. 연희 단체로서의「협률사」는 사사로이 존속되었는데, 1906년「원각사」발족 이후에도 그 잔여파들이「협률사」라는 이름으로 가끔 공연을 갖고 나중에는 지방 흥행을 떠나서 1913년경까지 근근히 연명하였다고 한다.
공식적인 「협률사」의 폐지 이유에도 같은 장소(급장)에서 사사로운 영리적 공연이 계속 되다가 1907년 2월 그곳에「관인 구락부(官人俱樂部)」가「협률사」자리에서 남대문쪽으로 이전하고 7월 하순에 이인직(李人稙)이 알선하여 그 자리에서「원각사」(圓覺寺)를 시작하게 된다. 신연극 〈은세계〉는 1908년 11월에「원각사」에서 공연되었다. 이〈은세계〉공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해서, 그것이 초기 신파극적인 상연이었느냐 혹은 대화창을 조금 넘어선 분창 형태의 초창기형 창극이었느냐는 아직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인직의 관여 없이 구식 광대들이 어떻게 `최병두 타령`을〈은세계〉란 신극적인 명칭으로 개명하여 명명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시되며, 설사〈은세계〉가 초창기형 창극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전통적인 판소리가 아니라 당대의 시사적 문제에서 취재한 창작 창극이며 서구식 극장무대에서 공연되었다는 점에서 신극의 기점으로 충분히 검토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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