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의 슬픔 - 김동인
- 최초 등록일
- 2010.11.30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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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동인의 소설 `약한 자의 슬픔`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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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강 엘리자베트의 의식 세계를 비판하고자 소설을 서너 번 꼼꼼하게 읽어 보았지만, 나는 결국 엘리자베트의 그 무엇도 비판할 수 없었다. 열아홉, 그 나이 즈음의 여학생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빼놓고 놀고 있는 친구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고(하지만 차마 자존심이 상해 내색하지 못하고), 멋진 남자를 보면 가슴이 설레고(그 남자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하고), 이성의 육체와 성행위에 호기심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일찍이 성관계를 경험 한 사람도 있다.) 서운함을 내색하지 않는다거나, 복잡한 심경을 말로 다 풀어내지 않는다거나, 좋은 데 싫은 척 내숭을 떤다거나 하는 것이 위선이고 가식이라 한다면, 이 또래의 여학생들 대부분이 위선자에 가식덩어리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결론 밖에는 되지 않는다.
K남작과의 불륜만 해도 그렇다. 물론 불륜은 도덕적 악(惡)이다. 하지만 먼저 접근 한 것은 K남작임이 분명하고, 엘리자베트는 그것을 딱히 거부하지 않았을 뿐이다. K남작과 엘리자베트의 관계를 꾸짖고자 한다면 당연히 나이도 많고 가정도 가진 K남작을 먼저 탓하는 게 옳다. 엘리자베트를 책망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의 일이다. 만약 `한밤 중 K남작이 엘리자베트의 방에 몰래 들어왔을 때 소리 지르며 내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렇게 행동했을 때 누가 더 불이익을 받게 될지 생각해 보라 묻고 싶다. `다른 사람(이환)을 사랑하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유부남과 몸을 섞을 수 있는지`를 비판한다면, 또 한 번 반문해 보자. 그렇다고 강 엘리자베트가 이환에게 추파를 던지기를 하였나, K남작의 아이를 가져놓고 이환의 아이라고 사기를 치길 하였나. (오히려 그는 K남작과 관계 후 이환을 고의적으로 피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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