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 최초 등록일
- 2010.08.10
- 최종 저작일
-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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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화
1930대 프로문학
- 1925년에 결성된 카프 하지만, 카프는 문학을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았다는 데에 한계가 있다. 즉, ‘계급투쟁’이나 ‘민족해방’ 등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학을 이용한 것이다. 때문에 문학은 순수하고 독립적인 예술의 영역으로 존재하지 못한 채, 정치적 선전도구로 변질되고 만다. 결국 문학을 정치적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예술성을 잃게 된 것이 프로문학의 한계라 지적된다.
목차
1. 1930년대 프로문학에 대하여
2. 임화 연보
3. 임화의 작품세계
(1) 성아(星兒) 혹은 성아(聖兒)
(2) 모던한 프롤레타리아
(3) 다시, 방향 없는 네거리에 서서
(4)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
(5) 폭풍이 불어오는 붉은 계절
4. 임화 작품 해설
(1) 우리 옵바와 화로
(2) 네거리의 순이
(3) 담(曇) ― 자코ㆍ반제티의 명일(命日)에
본문내용
1. 1930대 프로문학
- 1925년에 결성된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약자)는 일제 강점기의 문학사에서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3ㆍ1운동의 실패에 따른 좌절과 절망감에 빠진 동시대의 문학을 사상의 힘으로 이끌었으며, 따라서 카프는 프로문학을 한국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공식화했다는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 결국 프로문학의 등장은 시대와 민족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3ㆍ1운동 후 일제가 취한 문화정책은 철저한 감언이설로, 식민지 정책에 어긋나는 조선인들을 보다 교묘하게 단속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프로문학은 그것에 대한 대항으로 나왔다. 일본인들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과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벌금제, 강제저축, 강압적인 공장 감독, 민족적 멸시 등으로 혹사당하는 조선노동자들 및 민중들이 삶을 직시하고 세계의 형세를 인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일제의 강압 아래 신음하고 있는 식민지 민중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므로 카프문학은 마르크스주의의 모방이 아니라 ‘민족해방’을 지향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카프는 문학을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았다는 데에 한계가 있다. 즉, ‘계급투쟁’이나 ‘민족해방’ 등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학을 이용한 것이다. 때문에 문학은 순수하고 독립적인 예술의 영역으로 존재하지 못한 채, 정치적 선전도구로 변질되고 만다. 결국 문학을 정치적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예술성을 잃게 된 것이 프로문학의 한계라 지적된다.
2. 임화 연보
1908 (1세) - 서울 낙산 기슭에서 10월 13일 태어났으나, 가문의 이력이나 가족사항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음. 본명은 임인식(林仁植).
1921 (14세) - 보성중학교에 진학. 이강국, 이헌구 등과 동기임.
1925 (18세) - 졸업 직전, 모친의 사망과 집안의 파산 등으로 보성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함. 사회주의, 다다이즘 등의 예술사조와 사상 등을 접하고 관련 서적을 탐독.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