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와 사직] 종묘와 사직
- 최초 등록일
- 2002.05.22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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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묘와 사직이라는 책을 읽고 정리한거예여~~
목차
머리말
종묘
종묘제도
종묘 제례
사직단
사직단의 제도와 형식
조선시대 사직단의 연혁
사직단의 형식과 제례
종묘와 사직
본문내용
해마다 5월 첫째 일요일이 되면 전국에 흩어져 살던 전주 이씨들이 별로 소문도 없이 한 곳에 조용히 모여 하나의 아주 엄숙한 의식에 자리를 같이 한뒤 다시 살던 곳으로 흩어지는데 이 의식이 바로 종묘대제이다. 원래 이 제사는 조선시대까지는 나라에서 치르던 제사였는데 왕조의 막이 내리고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조선의 왕가 후손들인 전주 이씨의 모임인 대동종약원이 이 행사를 맡아서 다시 치르고 있다. 종묘대제는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고 돌아가신 임금께 올리는 제사였으므로 최고의 격식을 차렸으며 종묘 자체도 나라안에서 으뜸가는 중요한 시설로 꼽히었다.
종묘와 함께 으뜸으로 여겨진 또 하나의 시설로 사직단이 있다. '사'는 땅의 신을 가리키며 '직'은 곡식의 신을 가리키는데, 두 신께 제사드리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 사직단이다. 종묘와 사직은 그 제도가 고대 중국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모두 예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예란 사람이 사는 기본 법칙이며 국가의 질서도 모두 이 예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예는 다섯 가지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으뜸은 길례 곧 제사 지내는 예이고 길례는 다시 대사, 중사, 소사로 나뉘는데 종묘와 사직의 제사는 바로 길례 가운데 으뜸인 대사였다. 결국 종묘와 사직은 왕조 시대정신 세계의 질서를 지배한 예배의 가장 으뜸이었다. 우리나의 종묘와 사직의 제도는 중국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우리 고유의 기운이 숨쉬는 것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그것은 특히 종묘에서 더욱 뚜렷히 나타나게 되었다.
종묘와 사직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최고의격식에 걸맞은 최고의 건축 형태를 요구하였는데 종묘와 사직이 어떻게 건축적으로 구체화되고 어떻게 우리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