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현대문학사 시간에 과제로 제출한 자료입니다.
임화의 생애와 문학관, 그의 비평관을 통해 그의 시 전반과, 단편서사시에 대해서 서술했습니다. 나아가 임화 시의 의의까지 밝히고 마무리 했습니다.
목차
임화와 시
1. 개관
2. 임화와 단편서사시
3. 임화의 시의 의의
본문내용
1. 개관
임화(1908∼1953, 서울)
임화는 서울 동숭동 낙산 아래에서 1908년에 태어났다.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그의 가정은 파산 상태에 있었다. 특히 어머니의 이른 죽음은 그에게 정신적 상흔을 깊이 남긴다. 그의 시에 두드러지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는 모성성에 굶주린 인간 내면에 가득 쌓여 있는 균열된 말이며, 그 말이 여성화자의 탈을 쓰고 나온 것이다. 그는 보성고보를 2학년에 중퇴하면서 평생 정신적 유목민으로서 살아갈 계기를 얻는다. 당시 보성고에는 동기로 이상, 이강국, 이헌구 등이 있었고, 조중군, 윤기정, 김기림 등과는 선후배 사이였다. 이강국은 임화가 숙청당했을 당시에 남로당파로 몰려 같이 숙청을 당하였고, 조중곤과 윤기정은 카프 시절의 동지였다. 특히 윤기정은 함께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다. 김남천은 "보성고보 학모에 반들반들하게 면도를 하고 휘파람을 불며 다니던" 임화의 이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임화에게 책은 일종은 `존재의 집`과 같은 것이었다. 그가 시인, 영화인, 평론가, 혁명가의 다중적인 얼굴을 하면서도 시대의 한가운데를 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접한 책과 독서 지식 때문이었다. 빅토의 위고, 베를렌, 칼 부세를 읽었고, 아리시마 다케오나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탐미적 소설에도 접근했다. 크로포트킨의 『지식청년에게 고함』,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의 사회서적과 철학서도 읽었다. 그 무렵 고아나 다름없는 임화를 받아들인 것은, 그보다 7년 연상이며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박영희였고, 나중에는 박헌영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박영희의 집에 기식하면서도 그 방자함과 방탕함을 거리낌없이 드러내었다. 임화는 박영희를 `좋은 스승`으로 따랐다고 하지만, 실제로 박영희의 집에 기식하면서 그가 보인 행태는 분명 불량끼 가득한 소년의 그것이었다. 밥상에다 담뱃재를 털어놓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은 예사였고, 하루 종일 방에서 뒹굴거리면서 밥상 한 번 들고 나오는 법이 없었다. 박영희는 이 불량한 소년 임화 때문에 식솔들로부터 끝없이 불평을 들었다. 끝내는 사람 좋은 박영희도 어쩔 수 없었던지, 어떻게 하면 이 불량 소년을 쫓아내버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우인 김기진에게 7원을 빌리고 거기에 자신의 돈을 보태 도쿄까지 가는 노자를 임화 손에 쥐어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열심히 사숙하고 돌아온 그는 곧바로 박영희, 김기진 등 문학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구카프계를 처단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참고 자료
․김성윤 편,『카프시전집 1․2』, 시대평론사, 1988.
․김윤식,『임화연구』, 문학사상사, 1996.
․______,『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일지사, 1974.
․윤여탁,『리얼리즘시의 이론과 실제』, 태학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