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답사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9.12.22
- 최종 저작일
- 2008.12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풍납토성 답사보고서 입니다. ^^
목차
없음
본문내용
풍납토성은 거대한 판축토성으로 그 규모와 이를 축조하기 위해 동원된 인적, 물적 자원을 고려할 때 한성백제의 왕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몽촌토성과 함께 한성백제 몰락 때 보이는 북성과 남성의 2성 체제를 구축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그러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꾸만 훼손되어 가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역사적 의미와 발굴현황에 대해 알아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입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이번 답사의 첫 번째 코스는 풍납토성이었다. 풍납토성은 평지성 토성으로서 백제의 도읍이었던 위례성으로 유력한 장소이다. 풍납토성 내부에서 확인된 초기 백제시대의 집자리와 출토 유물을 통해 볼 때 풍납토성에는 기원 전,후 시기에 이미 상당한 규모의 집단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특히 일반 가옥이 아닌 국가나 왕실이 주체가 된 각종 제사시설이나 특수 건물지가 발견되고 있으며 막대한 양의 토기와 기와류, 전돌 등을 비롯해 사치품인 중국제 물품 등이 출토되었다. 라서 풍납 토성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백제 사회에서 상당히 높은 계급의 최고 귀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풍납토성은 한강변의 평지성으로 인근의 몽촌토성과 이성산성, 춘궁리 일대의 고적과 남한 산성등 지형지세와 성곽의 존재를 연계하면 고대 도읍지로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왕릉 규모에 해당하는 적석총이 집중되어 있는 석촌동 고분군을 비롯하여 시대가 내려오는 방이동 고분군 등 또한 풍납토성을 왕성으로 보는 증거의 하나로 보여지는 것이다. 아울러 풍납토성의 축조연대를 뒷받침하는 탄소연대측정에 의한 분석 결과는 기원 전후 시기부터 5세기 말에 이르는 한성백제 전 시기에 걸친 유적임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그 중심연대가 기원 전 2세기부터 기원 후 3세기에 이른다는 확인 결과는 풍납토성에 기원 전에 이미 사람들이 정착하였고 늦어도 3세기 전후한 시기에 성벽이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