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최초 등록일
- 2009.12.19
- 최종 저작일
- 2009.12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임진왜란과 그 영향에 관한 고찰
목차
●임진왜란
●임진왜란 배경 및 원인
●조선과 일본의 정치상황 및 군사력
●임진왜란 진행
●임진왜란이 미친 영향
본문내용
●임진왜란 배경 및 원인
1590년 일본 열도의 정권을 잡고 오랜 전국 시대를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간파쿠(關白) 자리를 그의 양자인 도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에게 물려주어 일본의 내정을 맡게 하고 스스로는 타이코(太合)라 칭하며 그의 야망을 동아시아 정복으로 확장하려 했다. 한편 15세기 후반 서세동점에 따라 유럽 상인들이 일본에 들어와 신흥 상업 도시가 발전되어 종래의 봉건적인 지배권을 강화하기에 노력하였다. 국내 통일에 성공한 일본은 오랜 싸움에서 얻은 제후들의 강력한 무력을 해외로 방출시킴으로써 국내의 통일과 안전을 도모하고 신흥 상업 세력의 억제를 위하여 대륙을 침략하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오랜 전국 시대를 끝냈지만 아직 산재해 있던 일본 내의 불평 세력의 관심을 외부로 향하려는 의도로 1591년 대마도주 소씨(宗義調)에게 명하여 조선의 사신을 일본에 보내어 수호(修好)하도록 했는데, 그때 “명나라를 정복하려고 하니 조선은 길을 빌려 달라.”라는 주장을 사신 게이테쓰 겐소(景轍玄蘇) 등을 보내 전달했다. 그러나 조선은 도의상 일본의 명 정복에 도움을 줄 수 없는데다 사실상 ‘길을 빌려준다’라는 말은 조선을 정복하겠다는 의미와 다름 없었으므로 조선은 이러한 요청을 거절하였다.
조선통신사
도요토미는 재차 대마도주를 통하여 교섭을 청하고 교섭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침략할 뜻을 나타내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오랜 논의 끝에 1590년(선조 23)에 보빙(報聘)을 겸하여 일본의 실정과 도요토미의 저의를 살피기 위하여 황윤길(黃允吉)을 통신사, 김성일(金誠一)을 부사(副使), 허성(許筬)을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에 보냈다.
1591년 음력 3월 통신사 편에 보내온 도요토미의 답서에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문자가 있어 그 침략의 의도가 분명하였으나 사신의 보고는 일치하지 않았다. 황윤길은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하고, 김성일은 이에 반대하여 `그러한 정상이 없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민심을 동요시킨다`고 하였다.
참고 자료
네이버백과
위키백과
네이버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