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맹자
- 최초 등록일
- 2000.09.08
- 최종 저작일
- 2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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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원전 280년경 만들어진 책
유가에 속하는 사상가 맹자(孟軻)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서 인의(仁義)의 도덕을 주장함.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이루] [만장] [고자] [진심]의 일곱편. 각 편을 상하로 나누어 모두 14편으로 한 것도 있다. 일곱 편 가운데 앞의 세 편은 주로 맹자의 여러 나라를 유세하면서 했던 언행을 기록했고, 뒤의 세 편은 은퇴 후의 언행으로 여겨진다.
맹자는 기원전 372년(다른 주장도 있다) 전국 시대 중기에 추(鄒)나라의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가(軻)이고 자(字)는 자여(子輿), 자거(子車, 또는 子居)라고 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서 학업을 닦았다고 한다.
공자의 유가 사상을 받아들인 맹자는 42~43세 무렵부터 송 등 제 임 노 설 등의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인의에 기초한 왕도정치를 강조했다.
제나라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는데, 8년에 걸쳐 중신의 대우를 받기도 했다. 다른 학파 사상가들과의 문답에서 유가로서 자신의 입장을 강조한 것도 이 무렵이다. 약 20년의 유세를 마치고 추나라에 돌아온 것은 62세 무렵으로 은퇴 생활을 보내다가 기원전 289년 84세로(다른 주장도 있다) 일생을 마쳤다.
<맹자> 7편은 맹자가 고향인 추에 은퇴하면서부터 제자 만장(萬章)과 함께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맹자> 7편의 문장에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어서 맹자 자신이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맹자가 죽은 뒤 만장과 공손추가 맹자의 말을 기록한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맹자>는 진(秦) 한(漢) 당(唐) 시대에는 유가 경전으로 치지 않았으며, <한서 예문지>에서는 제자(諸子)로 분류하고 있다. 송대에 유학이 성행하면서 주희가 <맹자>를 <대학> <중용> <논어>와 합쳐서 <사서>로 만들도 <맹자집주>(孟子集註)를 지었다. 그 이래로 <맹자>는 유가 사상에서 중요한 책이 되었다. 중국에서 1974년 무렵부터 있었던 `공자 비판`속에서는 맹자의 사상이 `노예제도를 부활시킨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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