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성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9.03.29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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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연극사에서 중요한 홍해성에 대해 조사함
목차
홍해성의 생애
홍해성의 활동
극예술연구회
홍해성의 연출, 연기관
본문내용
서론
한국에 ‘연극’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서구극이 유입되면서부터이다. 서구의 낭만주의 연극이 일본의 신파극을 만들었고, 이 신파극이 한반도에 유입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연희가 아닌 연극의 개념이 이 땅에 성립되었다. 1930년대는 신파극 즉 낭만주의에 대항하는 신극(리얼리즘)의 성장기였다. 현대 우리 연극사적 관점에서 1930년대에 신극과 대중극을 살펴보았을 때 성장 발달의 기여가 상당히 크다고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홍해성이다. 한국 연극에서 최초의 연출가로 불리어지고 있는 홍해성에 대해 알아보자.
1. 홍해성의 생애
(1) 일본에서의 홍해성
본명은 재원(在遠)으로 1894년 홍치장과 한순이의 5형제중 3남으로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17년 일본의 중앙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920년 연극적 관심이 높았던 김우진·조명희와 함께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였다. 극예술 협회가 비록 학생극단이고 여름방학 동안만을 이용한 아마추어 연극운동이었지만 그들의 목표가 뚜렷이 반신파(反新派), 리얼리즘극의 추구였던 만큼 정통적 신극의 시초라 볼 수 있다. 1921년 동우회순회연극단에서〈김영일의 사(死)〉를 연출하여 데뷔했다. 일본 중앙대학[中央大學] 법과를 자퇴하고 본격적인 연극수업을 위해 일본대학[日本大學] 예술과를 수료했다. 일본 신극의 선구자 오사나이 가오루[小山內薰]의 제자가 되었고 그의 소개로 한국인 최초로 일본 스키지[築地] 소극장에 입소하여 연기와 연출을 공부하면서 일본 인텔리 연극의 산실인 축지소극장의 운영과 실체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이 극장 창립공연 막심 고르키의 <밤주막>(오사나이 연출)에 처녀로 출연을 하였는데 호연이란 평을 받았다. 그는 1924년부터 스키지소극장 67회 공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