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 최초 등록일
- 2008.08.16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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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당 전기는 국력이 강성하고 정치가 안정되었으며 경제와 문화가 모두 비교적 발달하여 당시의 세계사상에 선도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업과 항해업의 진보는 더욱 해외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촉진시켰다. 당과 아시아 각 국간의 관계는 밀접해지고 경제, 문화의 교류는 전례없는 성황을 이루었다. 장안과 낙양은 각 국 교류의 중심이 되었고 그들간의 상호 보충과 흡수는 세계 문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신라는 한반도를 통일한 후 당과 장기간 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 문화의 교류를 더욱 빈번히 하였다. 신라의 금, 은, 우황, 인삼, 조하주 등 특산물이 대량으로 당에 수입되었다. 당의 수출품에는 사주, 차잎, 자기, 약제, 서적 등이 있었는데, 동시에 당의 정치, 경제 제도와 문화도 신라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신라의 도성인 평양은 당의 양경에 있는 궁전과 성방을 모방하여 축조되었다. 신라의 중앙과 지방 관제, 토지제도, 부역제도, 과거제도 등도 대체로 당제를 참조하였다. 당의 문화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는 또한 대규모의 유학생을 장안에 파견하여 학습시켰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 자는 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중국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지사과 고시에 참가하였으니 이들을 `빈공진사`라고 하였다. 고대 한반도에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매우 일찍부터 한문을 채용하였다. 7세기 때 신라인들은 중국의 자음을 근거로 `이두`를 만들어 한문을 열독하는 데 편의를 도모하였으나, 정식 공문이나 국사의 기록에는 한문을 채용하였다. 따라서 당대의 문서가 대량으로 신라에 수입되었으며, 그 외에 천문, 역법, 불경 내지 의상, 복식도 양국의 문화교류에 따라 신라에 전파되었다. 당대에는 또한 적지 않은 고구려인, 신라인들이 중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연해 지역의 성시에는 신라인들이 모여 살던 `신라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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