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이하응)에 대한 나의 평가
- 최초 등록일
- 2008.06.22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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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이하응)에 대한 나의 평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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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요즘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서 나라가 어지럽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건강보다 대외적인 국가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졸속 협상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가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옆에 붙고자 한 협상처럼 보인다. 이처럼 광우병 위험에 우리나라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대국과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것을 보고 흥선대원군이 떠올랐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의 엄청난 침공에도 꿋꿋이 우리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힘썼던 대원군이야말로 지금 강대국에 둘러 쌓여 있는 우리나라에 상황에 필요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대원군이 옛날처럼 통상 수교 거부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될 뿐 더러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대원군이 그 옛날 서양 세력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굳건한 의지와 다른 나라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정신이다. 이런 대원군의 국제상황을 바라보던 시각은 지금 우리나라를 두고 일본, 중국, 미국 사이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흥선대원군을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 이상으로 자세히 알아봄으로써 흥선대원군의 삶으로부터 국제 정치사회에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선대원군을 보고서 주제 인물로 선정하게 되었다.
먼저 흥선 대원군의 생애를 살펴보자. 흥선 대원군의 본명은 이하응으로 1820년 영조의 5대손으로 태어났다. 이하응의 젊은 시절 생애는 많이 알려져 있는 것처럼 방탕했다. 군으로부터 ‘흥선군’ 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세도정치기에 왕족에 대한 감시가 심하였기 때문에 불량배와 어울려 다니면서 안동김씨 가문의 감시를 피해 다녔다. 그러던 중 1863년 철종이 아들도 없이 35세에 죽자 왕족 중에서 왕을 물색하던 중 이하응의 아들인 고종이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이 때 고종의 나이는 단 12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흥선군 이하응은 ‘흥선 대원군’이 되어 정치적인 실권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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