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오초칠국의 난을 통해 본 한제국의 발전
- 최초 등록일
- 2008.06.01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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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사 시간에 발표문으로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오초칠국의 난 전개과정을 통해 한제국의 발전과정을 다뤘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한제국의 성립 과정
Ⅲ. 군국제(郡國制)의 시행
Ⅳ. 한제국의 중앙 집권 과정
1. 이성제후왕의 제거
2. 동성제후왕의 반란
3. 오초 칠국의 난과 그 결과
Ⅴ. 결론
본문내용
Ⅱ. 한제국의 성립 과정
진시황 사 후 진승(陳勝) ․ 오광(吳廣)의 난을 필두로 진나라에 대항하는 반란이 줄지어 일어나게 되는데, 주목 할 만 한 두 인물간의 경쟁으로 발전하였다. 그중 하나는 강소성 오중(吳中)에서 거병 한 항우(項羽)인데, 그는 전국시대 초의 명문인 항씨 일족으로 대대로 장군을 지냈던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강소성 패현(沛縣)에서 병사를 일으킨 유방(劉邦)으로, 초의 농민 출신이었다.
진승 반란 후 구초(舊楚)의 명장 항연의 아들인 항량(項梁)과 그 조카인 항우는 오(吳)에서 회계군수를 살해하고 기병하였다. 또한 패현(沛縣)의 치안을 담당하는 정장(停長)이었던 유방과 산림으로 도망한 형도들이 패령을 습격하여 기병하고, 후에 항량군에 합류하였다.
Ⅲ. 군국제(郡國制)의 시행
기원전 206년 유방이 한왕(漢王)이 된 후 202년 항우에게 승리하자, 황제에 즉위하여 장안을 수도로 하고 한왕조를 건립하여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를 사서에서는 전한 혹은 서한(西漢)이라 칭한다. 유방과 그를 받들어 한 왕조를 창업한 집단의 대다수는 신분이 낮은 출신이었다. 유방과 그들을 결합시킨 것은 혈연적 관계를 넘어선 개인과 개인의 신의관계였으며 전국시대부터 사회적 습속으로 자리잡아가던 임협적(任俠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Ⅳ. 한제국의 중앙 집권 과정
1. 이성제후왕의 제거
한고조 유방은 군국제 실시 때에 공이 큰 제장 및 근친의 일족들을 제후왕 ․ 열후로 분봉하였는데 이 가운데 제후왕이 분봉된 지역은 30여 군 이상이었으며, 이것은 황제에게 속해 있는 15군에 비하여 거대한 것이었다. 실제적으로 황제는 수도 장안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통치했을 뿐 전국토지의 약 2/3에 가까운 토지가 제후왕의 영토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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