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08.05.25
- 최종 저작일
- 2008.03
- 1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백범 김구에 대한 리포트 입니다.
많은 참고 부탁드립니다.
목차
1) 김구의 생애와 업적………………… 3 ~ 6
2)해방운동전후국내외정세…………… 6 ~ 8
3)김구 와 이승만……………………… 8 ~ 11
4)김구 와 간디……………………… 12 ~ 13
5) 김구와 테러 - 김구는 테러리스트 이다, 아니다?…………………………… 13 ~ 15
본문내용
.김구의 생애와 업적
백범의 아버지 순영(淳永)은 4형제 중 둘째로 의협심과 정의간이 넘치고 양반에 대한 저항심이 강한 분이었다. 그는 약한 자를 돕고 자 주 대변하였으나 그런 일로 양반들의 미움을 샀다. 그가 도존위(면에서 세금을 거두 는 자리)의 직책을 수행할 때에는 양반들에게는 가혹하게 공전(公錢)을 거두고 가난한 자들 에게는 자기가 대신 물어낼지언정 더 거두지는 않았다. 그 결과 3년이 못되어 공금에 축을 내고 사임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현풍 곽씨(이름, 낙원)로 14세의 나이에 열살위인 신랑을 맞아, 17세 난산 끝에 백범 을 낳았다. 부모는 백범의 교육을 위해 자기 집에다 서당 선생을 모시기도 하고, 부친의 병환으로 학자금이 부족할 때에는 이웃마을의 서당 훈장에게 간청, 무료로 교육시키기도 하였다. 특히 모친 은 백범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친 분이다. 백범이 옥에 갇혔을 때 옥바라지를 맡아 위로와 용기를 주었을 뿐 아니라, `안악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에는 "경기감사를 하는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고 말함으로써 백범에게 큰 격려를 주었다.
일찍 죽은 며느리를 대신하여 손자 인(仁)과 신(信)을 양육한 자정이며, 백범이 독립운동을 하는 데에 지장되지 않도록 두 손자를 이끌고 귀국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인내며, 왜경을 따돌려 버린 여성답지 않는 특유의 대담성과 지모(智謀)며, 백범이 일지(逸志)를 쓸 때 그 자세한 연월과 일시를 일일이 자문할 정도로 만년에까지 간직한 총기 등은 임정 주석 백범의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백범은 1892년 과거에 응시 했으나 매관매수의 실상을 파악하고 관직의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한때 풍수지리와 관상을 공부하였으나 만족하지 못했다. 그 뒤 동학을 접하고 그 사상에 매료된 백범은 최시형으로부터 황해도 팔봉접주로 임명받아 해주성 공격에 앞장섰으나 청군의 철수로 실패하였고, 황해도 동학군의 자중지란으로 세력을 잃게 되었다. 비록 이렇게 동학활동에서 실패했지만 동학교도사이에서백범은 ‘애기접주’라 불렸는데 접주라는 것은 어느 한 지역을 관할하는 지도자를 뜻하는 것으로 나이 18살에 그만한 지위를 지녔다는 것을 보아 그의 쾌활하고 넓은 유대관계 혹은 그 사교성, 지도력을 엿볼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