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버지의 깃발을 보고
- 최초 등록일
- 2008.05.10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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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을 보고 쓴 감상평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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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버지의 깃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 영화는 평소에 전쟁영화를 좋아하던 내가 라이언 일병구하기와 에너미 엣 더 게이트 뒤로 본 전쟁영화이다. 그리고 뒤의 두 영화와 같이 이 영화는 세계 제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이 영화는 일본과 미국과의 전투가 벌어진 이오지마섬전투 1945년 2월 16일 ~ 1945년 3월 26일)는 태평양 전쟁 말기, 오가사와라 제도의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미군과 일본군사이에서 생긴 전투를 말한다. 태평양 전쟁이 말기로 치닫던 1945년 2월 19일, 미군 해병대가 이오지마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3월 17일에 미군은 섬을 장악했으며, 거의 모든 일본군 부대가 전멸했다. 3월 21일에 대일본제국 대본영은 3월 17일에 이오지마 섬에 있던 일본군이 `옥쇄`(玉砕) 했다고 발표했다. 3월 26일,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대장 이하 남은 300명의 일본군이 마지막 돌격을 했으나 전멸했다. 이것으로 인해 조직적인 전투는 종결되었다. 2만 933명의 일본군 수비병력중, 2만 129명이 전사했다. 피해율은 96%였다. 한편, 미군은 전사자가 6821명, 부상자가 2만 1865명으로 집계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군과 미군은 수백개의 섬에서 전투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미군의 손해가 일본군의 피해를 넘어선 전투이다(단, 미군의 전사자와 부상자의 합계). 다만, 피해율은 약 40%이다. 이오지마는 도쿄 남쪽의 1,080km에, 괌 북쪽 1,130km에 위치하고 있다. 오가사와라 제도에 속하는 화산섬으로, 섬의 표면이 대부분 유황의 축적물로 뒤덮여있어 `이오지마`(硫黄島, 유황도)로 불렸다. 토양은 화산재라 보수성이 없었고, 물은 짠 우물물이나 빗물에 의존할수 밖에 없었다. 태평양 전쟁 전에는 유황의 채굴이나 사탕수수 재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이 1,000명 정도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1941년 개전 당시, 해군 전투대 약 1,200명과 육군 병력 3,700명 내지 3,800명을 인근 지치지마 섬에 배지하고 있었는데, 이 부대가 이오지마를 관할하고 있었다. 개전 후에 남방 전선과 일본 본토를 묶는 항공 수송의 중계지점으로서 이오지마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해군이 이오지마에 비행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당시 항공병 1,500명과 항공기 20기를 배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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