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름에 관한 고찰과 논의 - 플라톤 ‘국가▪政體’ 1,2권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8.03.15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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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가론 토론 분석 내용-올바름에 관한 고찰과 논의 - 플라톤 ‘국가▪政體’ 1,2권을 읽고 쓴 글입니다.
목차
1. 327a - 367e 전체 내용 정리
2. 주요 논변의 진행 및 논의점 도출
논의 1. 사람의 훌륭함을 기술의 훌륭함과 유비(類比)하여 파악할 수 있는가
1) 1권 전반부에서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의 논의
2) 1권 후반부에서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논의
논의 2.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완벽하게’ 논박당한 것인가
1) 2권에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주장
2)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논리를 통한 1권 논의의 재조명
3) 동일한 논리 사용을 통한 논의의 발전
본문내용
이상으로 결국 훌륭함이란 그것의 기능이 최적으로 발휘되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인간 역시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기능이 최대한 발휘된다면 그 인간은 훌륭한 인간이 된다. 예를 들어 통치자는 통치술을 잘 하면 훌륭한 인간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에게 기술과 같이 특정한 기능이나 목적이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분명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이와 상반되는 입장을 보인다.
“현대 불란서 실존주의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스스로 만드는 존재이다라는 자기 초월적 인간관(니체 등)을 계승하면서도 인간 이외의 모든 것에서 독립된 인간 주체성(主體性)을 현대인들에게 제시한다. 인간은 스스로 만드는 존재이다. 사람은 존재 이후에 스스로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은 실존주의의 제 1 원칙이다.” (성염, 문명숙, 김석수, <<인간이라는 심연(철학적 인간학)>>, 철학문화연구소, 1998)
이와 같은 논지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고 했던 것이다.
만약 실존주의의 관점에서와 같이 인간에게 특정한 목적이나 기능이 없다고 한다면 인간의 훌륭함을 기술과 유비 추리하여 논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술의 훌륭함은 기능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에 그 기능을 잘 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의 훌륭함을 동일한 방식으로 논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그 기능이 그 자체보다 중요하지만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체(실존)가 그 기능(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존재이며 자기 삶을 다스리는 주체이기도 하다. 즉, 인간에겐 기능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기능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모든 것’에는 그 고유의 기능이 있으며 그 기능을 잘 해내는 것이 그것의 훌륭한 상태라고 말한 명제를 인간에게 적용할 때는 문제가 생긴다. 주체성,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의 미덕을 논증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비유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