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 교회사 - 김상준
- 최초 등록일
- 2007.11.15
- 최종 저작일
- 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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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결교단 창시자인 김상준의 생애와 업적, 사상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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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881년에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예의를 존중하는 양반집 의성 김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03~4년경. 20살 전후하여 고향 용강군에서 평양 시내로 나갔다가 노방전도대에게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예수장이가 되어 상투를 자르고 집에 돌아와서 가문의 봉사제를 폐하여 집안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아버지는 김상준을 붙들어다가 매질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문중회를 열고 설득하였지만 그래도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비록 독자지만 할 수 없이 ‘불효자식’이라고 인정하고 죽이려고 멍석말이를 해 하인을 시켜 들에 내다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그 하인은 김상준을 문중 사람들 몰래 풀어 놓아 피신케 하였다.
1905년 초 고향에서 피신해 나와 일본으로 건너간 김상준은 완전한 구원과 성령의 세례가 사모되어 그해 4월 도쿄 성서학원을 찾아가서 입학수속을 하였다. 카우만 선교사는 동양선교회의 기관지에 김상준과 정빈(1905년 6월 입학)에 대해 두 학생은 열심히 공부한 모범학생이었다고 소개한다. 반면에 김상준과 정빈은 단순히 신학 공부에만 몰두하는 연구 생활만을 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된 뒤의 장래 일까지도 계획하였다. 이들은 학업을 마치면 고국에 돌아가서 복음전도관을 세워 체험한 성결 은혜를 전하며 전도할 것을 의논하고 준비하였다. 한편, 동양선교회는 이들 유학생으로 말미암아 조선 선교에 대한 계획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성결운동을 자기들의 사명으로 깨달은 김상준과 정빈은 도쿄 성서학원의 과정을 다 마친 후 이장하와 함께 카우만 총리에게 귀국인사를 하면서 한국에도 도쿄 성서학원과 같은 학교를 세워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카우만 총리 부부와 길보른 부총리는 1907년 5월 2일에 귀국하는 김상준, 정빈과 함께 한국에서의 성결 운동 전개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이 주 동안 서울에 묵으며, 서울 시내와 딴 교파 교회의 집회 광경도 시찰하면서 한국의 영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한국 민족을 사랑하고 계시며 성결의 은혜를 갈망하는 주의 백성들이 많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카우만 총리와 길보른 부총리는 정빈, 김상준 전도사로 하여금 성결운동을 시작하기로 하고 적극 후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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