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7.05.19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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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혼돈의 역사
2 디아스의 전제정치
3 멕시코 혁명
4 혁명의 변화
5 오늘날의 멕시코
본문내용
자신을 <멕시코의 독립의 아버지>로 지칭하며 멕시코시티에 입성한 이뚜르비데는 1822년7월 아구스띤 1세 황제로 즉위 했다. 일찍이 1822년에 소집된 의회에서는 부르봉 왕가가 멕시코왕권을 계승해야 한다는 집단, 이뚜르비데가 왕에 즉위 해야 한다는 집단 그리고 멕시코 연방 공화국을 창출해야 한다는 집단이 부상하여 서로 의견을 달리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대의 힘을 배경으로 이뚜르비데가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기형적인 멕시코제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불행한 멕시코의 역사의 시발점이다 되었다.
황제에 즉위한 이뚜르비데는 곧바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우선 독립전쟁 기간중에 황폐해진경제로 인해 왕실재정이 고갈되어 이뚜르비데의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인 군부가 불만을 품게 되었다. 또한 의회 내에서도 빈번히 공화주의자들의 반대에 직면하고, 국민들은 그의 호화스런 생활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에 대처하여 이뚜르비데는 1822년 8월 대규모로 정치범을 투옥하고, 10월에는 의회를 해산하면서 자신의 지지 세력만으로 수정된 위원회를 통해 멕시코를 통치하려고 시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여러 지역에서 발생했다.
개혁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은 산따안나였다. 그는 1822년 12월 베라끄라스에서 봉기하여 할라빠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세력을 규합하여 1823년 2월 군주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창출하기 위해 신헌법을 제정할 새로운 의회의 구성을 요구하는 까사마따 계획을 제안한 후 멕시코시티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에 이뚜르비데는 자신이 의회를 재소집하여 외위를 인준받으려 했으나 의회가 이를 거부하면서 황제의 즉위 자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탈리아로 정치적 망명으로써 기형적으로 탄생한 멕시코 제국은 1년도 못 되어 붕괴되고 말았다. 1824년 초 이뚜르비데는 재집권의 의도를 갖고 멕시코에 잠입했으나 곧바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