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리답사
- 최초 등록일
- 2007.04.12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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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구의 입지와 역사 장소에 관한 레포트로써 대구의 지리-약령시와 대구읍성 감영공원등-를 직접 답사를 통해 구성한 레포트입니다. 평가에서 A+ 받은 레포트입니다. 강추!!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대구의 역사
1) 대구의 입지와 영역
2) 대구의 장소적 경관
2. 답사지 연구
1) 400년 영남의 수도 경상감영공원 - ①선화당 ② 징청각
2) 대구의 읍성을 찾아서 - ① 토성조영 ② 석성 조영 ③읍성의 파괴
3) 약령시
4) 대구의 흔적들
5) 피로 얼룩진 순교의 현장 관덕정
본문내용
1. 대구의 역사
1) 대구의 입지와 영역
2) 대구의 장소적 경관
2. 답사지 연구
1) 400년 영남의 수도 경상감영공원
경상감영공원 터는 조선 선조 때 경상감영이 있던 곳으로, 그 터를 보전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1910년부터 1965년까지는 이곳에 경상북도 청사가 있었고, 도청이 옮겨간 후 1970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대구의 중심에 위치하여 `중앙공원`이라 불리다가,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공원 안에는 경상감영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과 경상감영 관찰사 처소로 쓰이던 징청각이 남아 있고, 관찰사와 대구판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총 27기의 선정비가 있다.
③읍성의 파괴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었던 1910연대를 전후하여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여 쌓았던 지방도시의 읍성들이 철거되기 시작하였는데 대구 읍성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대구의 주요관서와 주거지가 성내에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은 대부분 성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1905년을 전후하여 대구역과 경부철도를 건설하면서 많은 수의 일본인이 대구에 들어오며서 성곽을 경계로 성내는 한국인이, 성밖에는 일본인이 거주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구역을 중심으로 성 북쪽에는 일본인의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성곽은 일본인이 성내의 상권을 장악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성벽 자체를 민족적 저항의 상징물로 보았기 때문에 성곽을 해체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질서를 허물어뜨리고, 그들의 식민지 정책을 용이하게 하려고 성곽철거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후략
참고 자료
송언근외 8명, 지리로 읽는 대구이야기, 2002 도서출판 영한
http://hyunsookim.pe.kr/culture/document/daegurecover.htm 대구의 재발견
http://www.gri.pe.kr/ 향토지리연구회
http://100.naver.com/ 네이버 백과사전
경상감영공원 팜플렛
대구약령시한방문화축제 팜플렛
대구 관적정 순교 기념관 팜플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