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에 모든 것
- 최초 등록일
- 2007.02.09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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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3천년이란 긴 역사 속에서,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여자의 몸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왕조를 세우고, 16년 동안 중국 천하를 다스린 큰 권위를 지닌 강인한 여성 황제 사례는 오직 측천무후 한 명뿐이다. 세계적으로 넓게 봐도 여제의 출현은 드문 일만도 아니지만, 중국의 경우 한나라시대의 여후나 청의 서태후도 황제를 제쳐 두고 국정 실권을 장악했지만 그들 모두 황후로 올라서진 못했다.
목차
서론
본론
평범하지 않은 가문
황후가 되어가기 까지
결론
본문내용
평범하지 않은 가문
그녀의 성은 무(武), 이름은 조(照)로, 문수(文水) 출신이었다. 무조의 아버지는 무사확으로 병주 문수 사람으로 그 집안은 대대로 상업에 종사했던 평범한 서족(庶族) 출신 이였으나, 목재상에서 장안의 신흥 권세가로 출세한 벼락부자기도 했다. 그녀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 무사확의 지위는 상당히 높은 공부상서와 응국공 이었으므로 무측천은 결코 가난하고 지체가 낮은 서족(庶族) 한문(寒門)출신이 아니었다.
Ω 則天武后의 업적 Ω
무조는 특별히 인재 선발에 주의를 기울였다. 즉위 전에 그녀는 여러 번 ‘구현제(求賢制)’를 반포하여 재능과 학문을 갖춘 선비를 구하는 데 큰 힘을 쏟았다. 등극 후에는 인재 선발을 위한 조치가 뛰어났다. 첫째, 과거제도를 한층 발전시켰다. 상거(常擧)와 제거(制擧)를 통한 인재 선발에 주의를 기울였는데, 과거 시험 과목을 많이 늘리고 널리 가르쳐 깨우치게 할 수 있는 서적을 많이 마련해 시험에 응시하는 자의 수가 1만명이 넘을 정도로 많았고, 관직에 나아간 사람의 수도 매년 증가 하였다. 둘째, 신하들에게 인재 추천을 장려하거나 스스로를 천거하게 하였다. 인재를 찾기 위해 자주 관리들을 파견했으며, 천거 대상으로 문벌의 높고 낮음과 부귀빈천에 제한을 두지 않았고, 심지어 반역자의 친족이라도 능력 있고 청렴하다면 그것을 결함으로 삼지 않았고 발탁했다. 그녀는 관리 선발 범위를 과감하게 넓혔고 인재 선발에 제한을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조문윤,왕쌍회 『무측천 평전』, 책과 함께 2004
조관희,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 중국사』 청아 2003
풍국초, 『중국上下오천년사2』 신원문화사 2005
진순신,오자키 호츠키 『영웅의 역사9 (여인천하)』솔 2000
모리야히로시지음 양원권 옮김 『황제의 길』 마당넓은집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