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기녀시조
- 최초 등록일
- 2006.12.19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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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의 기녀의 삶과 시조
목차
Ⅰ. 序論
1. 연구범위와 목적
Ⅱ. 妓女의 文學史的 意味
1. 기녀의 문학사적 의미
1) 기녀의 기원
2) 기녀문학의 형성배경
Ⅲ. 妓女時調 작품분석 -주제별 분류
1) 待人
2) 怨望
3) 恨歎
4) 誘惑
5) 節介
Ⅳ. 妓女時調의 文學史的 擬議
Ⅳ. 結論
본문내용
Ⅰ. 序論
시조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한 전통적인 민족만학이다. 한 겨레와 나라가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존속해 왔다면 그들의 말과 글로 이루어진 문학양식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으로서 상고시대의 가요에서부터 신라의 향가와 고려의 별곡 등이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여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시조라는 형식으로 정제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 와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국민시가문학으로 꽃피웠다.
시조의 장르 담당층을 살펴봤을 때 그 중심층이 되는 층이 사대부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기녀계층과 천민의 소리패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계층이 참여하여서 시조를 국민문학이라 말하기도 한다.
신라 향가가 널리 지어졌다고는 하지만 주로 상류 지식층에서 즐긴 시가였으며, 고려시대의 시가인 고려가요와 경기체가도 그 당대의 일정한 사회계층의 시가였을 뿐이다. 또 고려시대부터 널리 지어진 한시는 짓기가 어려워서 상당한 상류 지식층만이 즐긴데 그쳤을 뿐이다. 그러나 시조는 그 시형이 간단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진솔하게 옮기기에 매우 쉬운 시형이어서 위로는 사대부로부터 아래로는 기녀, 천민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정감을 시형 속에 담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헌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시조도 작가계층에 한계가 있어서 조선시대 전 사회계층이 참여하여 폭넓게 향유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양반사대부 계층이 절대다수를 차지하여 창작하였음을 알게 된다. 그 밖에 일부의 서리나 아전이 주류를 이루는 하급의 중인층, 천민인 기녀들 가운데 제한된 일부만이 시조작가로 참여했을 뿐인 것이다.
황진이를 비롯한 일부 기녀층이 시조를 창작했으나 이들은 사대부층의 문화적 수요에 전적으로 봉사하는 집단으로서 존재의의를 갖기 때문에 사대부층의 부속물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바로 이러한 견해가 시조 작가계층의 한계를 주장한 것이라 보겠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예법에 의하여 여성에게 특수한 사회적 제약 속에서 복종적인 삶을 강요했다. 조선시대 양반 부녀자들은 崇儒思想으로 인한 주자학의 명분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활했다. 七去之惡, 三從之道 등 조선에 유교적 禮敎의 보급으로 가부장적 대가족제로 확립과 가계 상속에 있어서도 부계 상속제가 엄수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