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김만중과 구운몽
- 최초 등록일
- 2006.11.21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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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만중과 구운몽에 대해 2페이지 분량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1. 김만중의 생애
2. 구운몽에 대하여
2-(1). 구운몽은 지은 시기와 창작동기
2-(2). 구운몽에 드러나는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관
2-(3). 구운몽의 구성
2-(4). 구운몽의 표현방식
나오며
본문내용
들어가며
「구운몽」은 서포 김만중이 남해 유배 시절 어머니 윤씨 부인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주기 위하여 지었다고 전해지는 우리나라 양반 소설의 대표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소설과 국문을 천시했던 시대에 그 가치를 인식하고 국문소설을 만들어냄으로써 이후 국문소설의 발전을 가져왔다. 또한 「구운몽」은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관이 잘 반영된 환몽소설로써 그 구성 또한 이후 몽자류 소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류작인 옥루몽 옥련몽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렇듯 고전 소설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구운몽」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려 한다.」
1. 김만중의 생애
김만중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본관은 광산(光山), 아명은 선생(船生),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이다. 1637년 2월 10일 오시에 병자호란때 순절한 김익겸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윤부인을 따라, 서울에서 외가에서 자랐다. 윤부인이 몸소 글을 가르쳤다. 12시에 상시를 보고 16세 때 진사 초시에 합격하고 연안이씨와 혼례 한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한다. 그러나 임금 앞에서 직언도 불사하는 강직성으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김金`씨 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예조참의로 복귀하고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에까지 오르지만 숙종이 정비인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당한다. 유배지에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쓴 것이 `사씨남정기`다. 이러한 와중에 그의 어머니 윤씨는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던 끝에 병으로 죽었으나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남해의 유배지에서 56세의 일기고 숨을 거두었다.
참고 자료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 - 김병국 (서울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