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필리아의 연인, Porphyria`s Lover
- 최초 등록일
- 2006.11.09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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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Robert Browning의 “Porphyria`s Lover
목차
A. 생 애
B. 작품세계
C. Porphyria`s Lover
본문내용
A. 생 애
브라우닝은 런던 교외 Camberwell에서 1812년에 태어났다. 1812년은 놀랍게도 Charles Dickens와 William Makepeace Thackeray의 출생 년도와 같은 해이다. 아버지는 장서가 풍부한 은행원이었고, 어머니는 음악적 소양이 있는 다정하고 종교적인 부인이었다. 34세에 그가 결혼할 때까지 브라우닝은 부모의 슬하에서 떠난 일이 별로 없다. Comberwell 근처의 기숙사 학교에 다녔고, 런던 대학에 잠시 다닌 일이 있지만 여행도 별로 한일이 없었다. 그의 교육은 주로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이 집에서 외국어, 음악, 권투, 승마를 배우고, 광범위한 독서를 한 것이 그의 시의 배경적 지식이 되었다. 브라우닝의 최초의 시작품은 21세 때에 그가 가장 좋아한 시인 셸리를 본따서 쓴 `Paulne`이다. 그는 이 시에서 셸리처럼 낭만적인 자기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을 후회하고 다시는 그러한 고백 시를 쓰지 않으려고 결심하였다. 그 결과 그는 10여 년 동안 극작을 시도하지만 성공하지는 못한다. 그가 극적 독백이라고 하는 특이한 시법을 개발한 것은 일조의 극작의 연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브라우닝은 이 시법을 통하여 자기의 말을 직접 시로 표현하지 않고서 시중인물로 하여금 말을 시켜서 독자는 그 인물의 말을 통하여 시인의 말을 간접적으로 듣게 한다. 그는 이 극적 독백 수법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된다. 셸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브라우닝이 셸리처럼 이상의 날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진 않았지만, 그의 낭만적 열정은 Elizabeth Barrett과의 연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브라우닝이 6세 연상의 유명한 이 여류시인을 만난 것은 1845년이고, 그 다음해 두 사람은 결혼하여 이태리에 가서 1861년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Love is Best`의 행복한 15년을 보냈다. 그는 아내를 잃은 후 아들을 데리고 런던에 돌아오고, 1889년 베니스에서 객사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