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흥망
- 최초 등록일
- 2006.10.11
- 최종 저작일
- 2006.06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강대국의 흥망 정리 레포트
목차
1. 책의 내용 요약
2. 정리를 마치며(서평)
본문내용
1. 전후의 국제질서
제 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조약(1919.6.28)이 체결되고 유럽은 새로운 국제질서에 의해 재편되어 가기 시작했다.
전날의 합스부르크, 로마노프, 호엔촐레른 제국의 자리에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일단의 국민국가가 태어났다. 독일은 동유럽의 영토 상실은 적었으나 알사스 로렌의 프랑스 반환, 자르 지방에 대한 프랑스의 경제적 착취, 유례없는 비무장화 규정 그리고 거액의 배상 등으로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게다가 독일은 방대한 식민지를 영국에 넘겨 주어야 했고, 극동에서는 일본이 적도 이북의 독일령 도서들을 인계받는 대신 1922년 산동 반도를 중국에 돌려주었다.
1921~1922년의 워싱턴 회의에서 강대국들은 태평양과 극동의 현상태의 영토를 인정하고 비례에 따른 함대 규모의 제한에 합의함으로써 영·미·일의 해군 경쟁을 중지시키고자 하였다. 이로써 동과 서의 국제 체제는 1920년대 초 안정된 모습을 갖추었으며 남은 문제들은 국제연맹이 다루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1920년대와 그 이후의 국제 문제는 미국이 외교무대의 중심부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비록 제1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컸지만 여전히 영국과 프랑스가 주역이었고,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제연맹의 판단에 좌우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인상과 달리 1919년 이후 국제 체제는 4년 반에 걸친 총력전이 끼친 인구 감소와 경제적 타격으로 유럽 전체의 경제 성장률이 8년 정도 지체되었고 개별 국가가 받은 타격은 더욱 심각하여 예전보다 훨씬 더 연약한 체제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비의 문제가 유례없이 복잡한 경제적 문제를 야기 시켰다. 자금의 뒷받침 없이 발행되는 공채가 급격히 늘었고 재무부가 발행하는 지폐는 물가를 치솟게 했다. 허술한 화폐, 재정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끊임없이 격화되어 중부와 동부 유럽에 재앙이 초래되었다. 세계적 디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대량 실업으로 국제 정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제조업 원료와 농산물 부문의 치열한 경쟁은 각국 정치로 하여금 자국내의 문제를 타국을 통하여 해결하게끔 하였다. 극단적인 집단, 특히 우파는 경제적 왜곡을 이용하여 자유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면서 필요하다면 무력으로도 단호한 국가주의적 정책을 펼 것을 요구하였다. 특히 바이마르 공화국과 스페인, 루마니아 등 민주주의가 취약한 나라들은 이같은 정치 경제적 긴장에 시달렸다. 일본의 보수지배세력은 국수주의와 군국주의의 세력에게 밀렸다. 부의 주된 잉여국인 미국과 프랑스는 누구도 채무국들을 구제하려 들지 않았다. 사실상 프랑스는 점점 독일의 태도에 감시하고 자신의 유럽 외교를 강화하는 데에 재정력을 동원했다.
참고 자료
강대국의 흥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