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흥망사 - 독일의 경제사를 중심으로 -
- 최초 등록일
- 2020.04.06
- 최종 저작일
-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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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대국의 흥망사 - 독일의 경제사를 중심으로 -"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시대적 상황
1) 교역
2) 산업정책
2. 관세동맹 & 호밀과 철의 관세
3. 1848년 헌법
Ⅲ. 경제의 부흥
1. 1850년대 독일
2. 영국과의 관계적 이해
3. 경제적 추월의 해석
Ⅳ. 경제의 쇠퇴
1. 도스에서 1931년까지
2. 전쟁 직후의 경제
3. 경제의 기적
4. 유럽의 독일
Ⅴ. 결론
본문내용
Ⅰ. 서 론
독일은 나폴레옹 전쟁 이전에는 355개의 영방(Land)과 1,476개의 자율적인 제후 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815년의 빈 의회는 이러한 변화들 중 상당수를 추인해서, 결과적으로 구체제의 정치적 단위들을 느슨한 연방(Bund)으로 조직된 새로운 39개의 독립적인 영방으로 축소시켰다. 그 후 1871년까지 서서히 그 다양한 영방들이 프로이센의 주도하에 독일 제국으로 통합되어 갔다. 여기에서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불황,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했던 치명적인 전간 기, 제2차 세계대전과 경제기적(Wirtschaftswunder), 마지막으로 유럽 통합에서 신(新)독일의 역할을 다룰 것이다.
Ⅱ. 본 론
1. 시대적 상황
1) 교역
아우크스부르크와 뉘른베르크는 베네치아와 집중적으로 거래했고, 푸거 가문과 같은 독일 남부의 은행가들은 안트베르펜, 리옹, 세비야와 거래했다. 함부르크는 주로 영국과 거래했고, 브레멘은 면화와 커피를 취급하는 대서양 횡단 거래를 발달시켰다. 특히 함부르크에서는 응집력이 있고 공화주의 적이며 과두적인 상인계급이 도시를 지배했으나,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상인이 두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관세동맹에서 벗어나 국제교역의 계속을 원하는 “영국당”을 형성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국내교역과 정기시, 화물취급업, 지역 산업과의 밀접한 협력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 후 후자 집단이 승리함으로써 프랑크푸르트는 일찌감치 관세동맹에 참여했다. 주변지역과 달리 독일 내부적으로는 소상점주는 있었지만, 원거리 무역에 종사하는 상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 원인 중 일부는 열악한 상태의 통신, 도로, 수상교통 그리고 내륙도시들이 부과하는 수많은 강상(江上)통행세였다. 귀족과 부르주아는 상업을 천시했고, 특히 부르주아는 상인계급에서 제후에 의존하는 관료계급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중앙에는 길드가 주도하는 “고향마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의 경계를 지나가는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고 철저하게 규제하며, 외부인을 경계했다.
참고 자료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찰스 P. 킨들버거, 까치, 2004
새 독일사, 이민호, 까치, 2003
이야기 독일사, 박래식, 청아출판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