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박정희 대통령의 한국 과학 발전
- 최초 등록일
- 2006.02.16
- 최종 저작일
- 2005.11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오늘날 서울대학교 황우석 박사의 놀라운 연구 성과로 우리나라가 과학의 선진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구의 강대국에 비하면 실로 엄청나게 빠른 과학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빠른 과학발전의 선두에는 박정희, 그가 있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한창 재조명 되고 그에 관한 책이 여러 권 나오고 또 몇몇의 사람들이 그와 같은 리더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박정희에 대한 역사가 다시 씌어지는 시점에서 우리는 정치적이거나 인간적인 측면이 아닌 한국 과학발전에 이바지한 엔지니어로써의 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이켜 봐야 한다. 또 그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발전의 모습을 비교하여 봐야 한다.
목차
*개요*
1. 서론
2. 본론
- 박정희 대통령의 약력
-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발전에 이바지한 바
3.토론해볼 사항
본문내용
2. 포항제철소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했던 한 마디,
“임자, 철은 산업의 쌀이야. 쌀이 있어야 밥을 해먹지 않겠나? 그러니 자네가 제철소를 하나 지어줘야겠어.”
이리하여 중화학공업의 초석이 되는 포항종합제철의 창립이 1968년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를 짓기 위해서 KISA와 종합제철건설에 관한 기본 협정을 1967년 10월 20일 체결하였다. 하지만 KISA측에서 9570만 달러에 달하는 외자를 도입해 준다고는 했으나 구체적인 자금 제공 액수와 조달 시기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이 회사원들이 제때에 자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협상단이 설득에 들어갔으나. 끝내 그들은 건설 자금을 지원해주지 않았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 박태준이 생각한 마지막 방법은 대일청구권 자금이었다. (현재 이때 이 돈을 받은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하다.) 이로써 자금이 마련되었고, 제철소의 기술은 박태준의 끈질긴 노력으로 일본의 ‘신일본제철소’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의 제1고로에서 최초의 쇳물을 토해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