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학]명성왕후에 대한 생각
- 최초 등록일
- 2005.12.17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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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성왕후와 개화기 인물에 대한 심포지엄을 보고 온 걸 토대로
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명성왕후 뿐 아니라, 외국인눈으로 본 조선에 대한 의견도 살짝 언급되어있네요,
심포지엄 참여 후 제 생각을 썼기때문에, 개인레포트에 적합하겠네요.
목차
명성황후, 그녀가 역사에 남긴 빛과 그림자
- 제 4회 명성황후 재조명 학술제를 다녀와서-
본문내용
학술제를 위해 명성황후와 개화기의 인물들에 대해 빈틈없이 조사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발표자와 토론자의 열정은 대단하였다.
나는 명성황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중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배운 시해사건(을미사변)’ 혹은 ‘시아버지(흥성대원군)와 갈등을 빚어낸 며느리’일 뿐 이였다.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그의 사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 왔고 최근에는 문학작품이나 뮤지컬, 심지어는 TV 드라마에서까지 다루어져 그 관심이 고조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나 연구는 그리 객관적이지 못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그들의 식민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전시대인 고종 시대를 철저하게 왜곡시킴으로서 우리의 근대사를 묵인시켜왔다.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도 그 중 하나로 그녀를 대원군과의 감정대립으로 나라를 망친 주범으로, 외세(청나라)의 앞잡이로 인식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의 암살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도 그러했다. 아울러 고종황제를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인식시킴으로써 그의 업적이나 정치적 노력 혹은 정치적 입장을 무시하고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사이에서 우왕좌왕한 인물로 그려냈다. 덕분에 당시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정치적인 역할은 실제보다 왜곡되어 부풀려졌고 우리나라 자체의 근대화 노력은 무시된 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음이 정당화 된 것이다. 명성황후의 정치적 역할의 과장은 이후 연구에서도 계속되어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번 학술제를 참가함으로써 많은 선생님들의 발표를 통해 명성황후는 물론 흥선대원군, 고종황제, 그리고 박영효를 비롯한 개화기의 인물들, 당시 역사적 배경과 주변나라에 대한 인식, 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과 알다가도 모르는 정치적 관계의 세심한 면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역사가들은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을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이면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역사 속의 숙명적인 라이벌로 파악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