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고려농장의 성립과 구조
- 최초 등록일
- 2005.12.16
- 최종 저작일
- 2005.06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고려시대 경제구조의 변화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전시과체제의 붕괴에서 권문세족의 농장형성과정과 녹과전설치,
그리고 고려말 과전법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중세 토지제도의 전반적 흐름을
짚어보고있습니다.
목차
1. 전시과 체제의 붕괴
2. 농장의 발달과 그 구조
1) 수조지 집적형 농장
2) 사적 소유지형 농장
3. 녹과전의 설치
1) 녹과전
2) 녹과전 분급에 대한 견해
3) 녹과전의 탈점
4) 녹과전의 소멸
4. 사전.농장의 혁파
1) 전민변정
2) 개혁주도세력의 변화
3) 사전개선론과 사전개혁론
본문내용
고려전기의 사회체제를 경제적으로 지탱해 준 것은 전시과체제였다. 왕족으로부터 문무양반과 군인․향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배층은 국가에 대한 복무의 대가로 수조지를 분급받았고, 모든 지배기구 역시 수조지를 배정받아 재원을 확보. 이에 반해 백성들은 자기의 소유지인 민전의 자가 경영을 통해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부세를 납부하여 녹봉과 국용 및 군수 등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이 체제는 12세기 초엽부터는 점차 붕괴의 조짐을 보이더니 무신정권이 들어서면서 파탄하기 시작하였다. 무신란을 전후한 수조지의 세습은 정부의 수조지 관리능력의 마비로 인해서만 야기된 것이 아니다. 양반관료들은 관직의 취득을 통해, 향리․군인 등은 職後의 세습을 전제로 하여 현실적으로 세전되었다. 다만 이 전수과정에서 관의 공인이 매개되었다. 국가권력의 규제를 벗어나게 되면 수조권자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어 갔다. 수조지분급제의 기본원칙이 무너지고 직역담당자는 수조지 점유에서 배제되고 무자격자가 수조지를 세전하는 사태는 더욱 심해져갔다. 수조권은 납조자인 전객농민에 대한 전주의 지배라는 측면에서도 강화되었다. 사전의 가산화, 즉 조업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고려전기 수조권분급제의 붕괴와 토지겸병과 수체체제의 문란 등은 전시과체제의 전면적 붕괴를 수반하였다. 한편 농업생산력은 발전과 수공업 발전 등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은 사회분화를 가속화시켰다. 고려전기에 정호층에게는 직역을, 백정층에게는 요역을 부과하는 국역동원체제는 전시과체제 운영의 기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려 후기 ‘務農治富’하여 신분을 상승시키기도 했고 많은 농민층이 몰락하여 무전 농민화하였다. 일반 기층민의 변동은 전시과 체제 역시 동요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참고 자료
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2002
서울대 출판부, <한국사특강>, 서울대출판부, 2000
한국중세사학회, <고려시대사강의>, 도서출판 다함께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역사입문2>, 풀빛, 2002
박경안, <고려후기 토지제도 연구>, 혜안
한길사, <한국사> 2,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