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사]이병도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10.05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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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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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들어가며
Ⅱ.생애
Ⅲ.국사관
Ⅳ.국사연구
ⅰ)고대사 연구
ⅱ)고려․ 조선시대 연구
Ⅴ.사학사적 위치
Ⅵ.나오며
본문내용
1.들어가며
1920년대 후반기의 역사 연구의 학풍은 박은식, 신채호 등에 의해 주도된 민족주의 사학과 백남운 등에 의해 주도된 사회경제사학으로 불리는 유물사관 그리고 역사적 사실의 고증적 인식을 주로 하는 실증사학으로 크게 분류 될 수 있다.
실증사학계로써 해방이후 국사편찬위원회를 비롯하여 대학에서의 후계 양성 등 역사학계를 이끌어 간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되던 이병도의 삶과 그의 역사인식의 내용과 한계 그리고 사학사적 의의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2.생애
이병도는 노론 유력 가문인 우봉(牛峰) 이씨이다. 12살인 1907년에 서울로 올라온 후 비로소 신학문에 눈떠 보광학교와 일인이 경영하는 불교고등학교에 다니고,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했다. 보성전문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예과를 거쳐 ‘사학 및 사회학과’를 1919년에 졸업하였는데, 동경제국대학의 이케노우치와 와세다 강사 츠다로부터 문헌고증학, 즉 실증사학의 기초를 다졌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던 해 귀국한 이병도는 이케노우치의 추천을 받아 1925년에 설치된 조선사편수회 조선사 편수회는 민족주의 역사가인 박은식의 『한국통사』가 출간되어 항일정신이 크게 고취되는 데 자극을 받아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만든 어용학술기관이다.
의 핵심위원으로 들어가며 본격적인 학문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조선사편수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등에 조선시대 유학사, 고려시대 풍수도참사상, 그리고 한사군의 강역을 한반도 내의 존재설을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1934년 5월 11일에는 이병도 등을 주축으로 하여 조직된 역사연구회인 ‘진단학회’가 결성된다. 그 학회지인 『진단학보』를 통해 이병도는 또한 조선시대 유학사, 고려시대 풍수도참사상, 그리고 한사군의 강역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연구에 몰두하였다. 50세의 장년으로 8․15를 맞이한 그는 경성대학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취임하여 여러 보직을 맡는 한편, 밖으로 국사편찬위원회등의 위원을 겸임하며 국사학계의 중심인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참고 자료
조동걸 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창작과 비평사, 1994
유시민 저,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푸른나무, 199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