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임춘 - 한시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5.09.20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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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춘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임춘의 한시와 설명도 되어 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문학과 함께 한 임춘의 생애
2. 문학적 특성
3. 임춘의 문학사상적 기여
4. 임춘의 시세계
5. 임춘의 산문성 한시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문학과 함께 한 임춘의 생애
무신란 이후 임춘의 경제적 빈궁이나 생활난 타개를 위한 행위의 과정을 주목한다면 그의 생애는 현실지향성이 드러나겠지만 문학사상과 관련하여 본다면 임춘의 생애는 문학개혁의지로 일관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임춘은 고려전기 문벌문신의 지배체제가 구조적 모순의 절정에 달하여 붕괴직전인 의종 연간에 출생한 사람이다. 그의 지반은 고려전기 문벌사회의 상승가문이었으며 문벌사회에서 필요한 문학적 수업을 백부인 임종자로부터 이어 받았고, 이어 유학과 고문공부를 겸하면서 주위로부터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아 대성이 기대되었고, 스스로도 자신만만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량은 오히려 그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였다. 탁월한 문학적 재능은 그로 하여금 음서의 길을 거부케 하였으며, 고문 공부는 그로 하여금 과거시험에 낙방케 하였으며, 시험공부보다 유학공부에 더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이같은 무신란전까지의 그의 전반생은 문장력의 발현을 통해 입신출세하려는 애당초의 지향과 일치하는 방향은 아니었으므로 궁계에 진출할 뜻을 이루지 못한 그의 전반생에서 남은 것은 문학적 수준의 획득과 고문의식이라는 문학관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의종 24년의 무신란은 문신귀족 체제의 와해와 더불어 임춘의 후반생을 어려운 국면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루 아침에 무인의 세상이 되었으니 문신 가문의 후예인 일개 청년의 지위야 땅에 떨어진지 오래지만 식생활의 기반인 조상 전래의 토지마저 군인들에게 강정 당하고 의식주마저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병처과말를 거느리고 개경과 지방을 전전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지면 인사에게 구직서를 올리기도 하고 빼앗긴 토지를 환수하기 위해 탄원서를 내기도 하였으며 과거시험에도 응시하여 보았지만 일차원적 생활고 해결은 무망할 뿐인 참담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고려 문학사상사와 관련하여 이 일개 한사인 임춘의 이 시기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무신란 이후 위와 같은 참담한 처지에서 일차원적 생존의 문제에 시달리며 병들어 기력이 쇠잔한 상황에서까지 당시의 고려문학이 병폐를 고민하며 그 개력의지와 방법을 모색하였다는 점이다.
참고 자료
김진영, 「임춘」『고전작가의 풍모와 문학』, 2004.
박유리, 「임춘의 시에 나타난 현실주의적 성향에 대해서」『어문학교육』제5집, 한국어문교육학회, 1982.
손정인, 「임춘 산문성 한시의 이해」『대동한문학』제8집, 대동한문학회,1996.
심호택, 「임춘의 문학사상연구」, 대동한문학회.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