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르꼬르뷔제
- 최초 등록일
- 2005.05.31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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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La Roche et Jeanneret 1923-1925
르꼬르뷔제의 원명은 샤를르 에두아르 잔느레(Charles Edouard Jeanneret)였다. 스위스의 험준한 쥐라 산맥의 지류인 해발 1000m가 되는 라쇼드퐁(La Chaux-de-Fonds)에서 1887년 10월 6일 태어났다. 이 지역은 1598년 낭트칙령 이후 남불에서 활동하던 신교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서 스위스로 이주하여 수세기 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아버지 조르쥬 에두아르 잔느레 그리는 시계 세공업을 부친으로 이어받은 전형적인 중산층이며 그의 어머니 마리 샤를로테 아멜리아는 피아니스트이며 음악교사로 활동하였다.
청교도적 가치관을 가진 어머니는 규율과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과 직업의 신성함, 자신감 등의 가치관을 자식들에게 일러주었다. "무엇을 하고자 할 때에는 스스로 실제로 그것을 확실하게 행동하라"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평생에 걸쳐 잔느레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잔느레는 1917년 30세의 나이에 그의 고향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였다. 파리에서의 첫 사업은 ꡐ산업기획사ꡑ를 설립하여 활동하였으나 4년 후 도산하였다.
그의 일생을 통해 파리의 초기 생활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오! 파리여, 오! 사막이여, 인정도 사정도 없는 싸움터여.ꡓ라고 술회한 것으로 보아도 파리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창 왕성하게 일할 나이에 파리의 생활 6년 동안 하나의설계도 맡지 못했다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잔느레는 이 어려운 시기에 ꡐ예술과 자유(Art et Libert) 그룹의 회식 석상에서 오귀스트 페레를 통해 화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오장팡을 소개받았다. 시골에서 올라와 파리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잔느레의 눈에 비친 오장팡은 예술에도 뛰어날 뿐 아니라, 매력적이며 머리도 뛰어난 선망의 대상이었다.
오장팡과의 만남은 잔느레의 사상에 목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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