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모스크바 3상 회담
- 최초 등록일
- 2005.05.22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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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모스크바 3상 회담에 대해
그 배경과 그 결과에 미친 영향을 분석
그리고 모스크바 3상 회담이 같은 중요성과 그 의미를 고찰
목차
1. 모스크바 3상 회담과 미ㆍ소의 이익관계
2. 모스크바 3상 회담의 결정은 사실상 실현 될 수 없는 것이다
3. 모스크바 결정안을 지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본문내용
1. 모스크바 3상 회담과 미ㆍ소의 이익관계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한 채 한반도는 미ㆍ소라는 거대한 외세에 의해서 분할 점령된다. 또한 우리 민족은 우리 힘으로가 아닌 외세에 의해서 독립을 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좌우의 대립으로 민족의 세력이 분열되어 있었다.
모스크바 3상 회담 당시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다른 차원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었다. 우선 그들은 추구하고자 하는 이념과 사상이, 그리고 경제방식이 달랐다. 미국으로서는 한반도 전체가 미국 자본주의 세계시장 구도 속에 포함되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최소한 적대적이지 않은, 협조적인 정권이 한반도에 들어서는 것이 목적이고, 그것도 안 될 경우에는 지금 점령하고 있는 남한만이라도 자신의 세력 안에 두어 대륙의 사회주의 세력으로부터 일본을 방어하는 전초기지가 되길 원했다. 한편 소련 측에서는 이미 한반도는 해방 직전부터 좌익세력이 우익세력보다 우세함으로 임시정부를 수립할 경우 사회주의에 가까운, 즉 자신과 협조적인 정권이 들어서리라 판단했다.
국내의 각 정치세력들도 자신의 이익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고 보여 진다. 먼저 이승만과 한민당은 그 구성원 중에 지주 출신과 친일경력자가 많아 임시정부가 들어설 경우 친일 청산과 토지 개혁으로 자신의 세력이 약화 될 것을 우려하여 반탁운동에 나선다. 김구 선생의 상해임정 세력의 경우 새로운 임시정부가 설립될 경우 자신들은 실질적 임시정부가 될 길은 막히고 한낱 망명정부로 남을 상황이었다. 좌익 세력의 경우를 보면 조선공산당은 시탁통치가 국제민주주의 세력의 조선독립 원조 방안이라 주장하면서 신탁통치를 지지하였다. 또한 인민당의 경우는 신탁통치가 즉시 독립은 아니지만, 자주독립국가와 건전한 민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국제적 원조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좌익 세력의 지지는 독립을 위해서라면 신탁도 할 수 있다는 의도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계급 해방이라는 점이 그 이면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