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비판과 이해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4.12.11
- 최종 저작일
- 2004.12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1930년대 한의학 부흥 논쟁은 어떤 상황에서, 왜 일어났는가?
2.한의학 부흥 논쟁의 쟁점들(한의학 부흥의 의의,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관계...)
3. 결론-의문점과 한의학 논쟁의 역사적 의미
본문내용
우리나라에 공식적인 서양의료가 도입된 것은 1884년 갑신정변 때 광혜원이 설립된 이후부터이다. 하지만 공식적 서양의료의 도입 이후에 1900년에 반포된 의사규칙에 따라서 서의도 전의로 임용되었는데. 여전히 한의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로 동,서의가 병용되던 광제원이 폐쇄되고 통감부가 대한의원을 설치한다. 여기에서 한의가 모두 축출되게 된다.
일본은 개항 이후에 서양의학만이 제대로 된 의학이라는 생각 하에 일본 의료계를 서양의학 위주로 새롭게 편성하고, 우리나라를 강점한 뒤에 이를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도입하여 우리나라의 의료계가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 한의학에 대해서 일제의 탄압이 있어왔고 한방의학을 비과학적인 야만의학이라 매도하며 한방의료사들의 의료행위 권리를 박탈하고 면허를 취소하는 등의 강압적 조치까지 감행하였다. 그러나 한의학을 부정하는 것은 한의약계 종사자들의 생계와 대체할만한 의료가 없다는 점에서 과학으로서의 한의학은 인정하지 않되 보건의료로서의 한의학은 부정하지 않았다. 이른바 ‘낮은 지위로써의 의학’으로 한의학이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격규정이 느슨한 의생제도로 인해 자질이 부족한 한의사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이후로는 정규 교육기관의 부재로 한의사들의 수는 점점 감소하였다. 또 총독부에서는 의생규칙을 개정하여 ‘산간벽지 지방에 한하여 의생을 허가’하는 방침으로 한의사를 도서지역에서 산간벽지로 내몰았고, 1940년부터는 의생시험제도를 폐지하여 의생의 신규 배출을 완전히 차단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