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유학] 인물성동이론
- 최초 등록일
- 2004.12.11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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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어려운 주제이면서 자료가 많지 않기에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巍岩 ․ 南塘 이전의 인성물성론
2-1. 퇴 ․ 율의 경우
2-2. 퇴 ․ 율 이후의 경우
3. 논쟁의 전개
3-1. 巍岩의 인물성동론(洛論)
3-2. 南塘의 人物性異論
4. 목산의 견해
5. 논쟁에 대한 평가
6. 나오며
7. 참고문헌
본문내용
5. 논쟁에 대한 평가
이상 南塘과 巍岩의 논쟁 그리고 목산의 견해에 이르기까지 인물성동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살펴보았다. 조선시대에 중요한 논쟁이었던 만큼 이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우선 이 논쟁은 주리적 경향을 띤 巍岩이 理通을 기반으로 하여 氣局을 해설함에 대해 주기적 경향을 띤 南塘은 기국에 인해 이통을 해명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입장이든 명철한 심안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입장을 수용하지 못했던 것은 주자의 理同氣異나 율곡의 이통기국을 진정한 理一分殊로 오해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겠다. 즉 理一은 理同理通에 배당하고 分殊는 氣異氣局에 배치시키는 경향을 모두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巍岩의 理一分殊는 五殊에서 그치고 南塘의 기국은 陰陽理氣以下의 氣異로 氣一의 단계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해하는 일원이체는 理一分殊가 아닌 理一氣殊였기에 이들이 기일의 개념을 일찍이 확립하였다면 이러한 논쟁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 논쟁은 큰 진전없이 오랜 시간동안 제자리에 있었으나 주기론의 끝에 鹿門이, 주리론의 끝에 蘆沙가 나와 조선왕조의 성리학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논쟁이 湖洛是非의 실마리가 되어 한국철학에 있어서 경험론 對 합리론의 대립론변을 일으키어 철학의 입장과 방법론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