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혁명과 지배집단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24.03.21
- 최종 저작일
-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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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주혁명과 지배집단의 변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관롱집단의 형성
3. 당 초기의 정치적 상황
4. 측천무후의 집권 및 북문학사의 등장
5. 측천무후의 통치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남성 중심의 전근대 사회에서 여왕의 등장은 항상 큰 파장을 불러왔다. 신라(新羅)에서는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담(毗曇)이 난을 일으켰으며, 여왕의 부족한 위엄을 보충하기 위해 거대한 황룡사 구층목탑(黃龍寺 九層木塔)을 축조하였다. 그러나 신라 왕실에서 여왕이 등장한 것은 골품제라는 특수한 신분제와 진평왕 시기 형성된 ‘성골(聖骨)’이라는 개념으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진덕여왕(眞德女王)과 진성여왕(眞聖女王)의 사례가 있었기에 유일한 사례는 아니었다.
이에 반해 중국에서는 역사상 단 한명의 여왕이 집권한 사례가 있다.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후궁이자 고종(高宗)의 황후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자신의 아들 둘을 폐위시키고 직접 황제(皇帝)의 자리에 오른다. 이전의 연구에서 측천무후의 집권은 소위 ‘여화(女禍)’라고 일컬어지면서 여성이 황제가 되었다는 점만을 부각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측천무후의 집권과 관련하여 자세한 내막과 정책을 통한 연구가 이어졌다. 또한, 핵심적으로 측천무후는 수(隋)와 당의 건국세력이자 긴 시간동안 지배집단으로 이어진 관롱집단(關隴集團)을 일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어서 새로운 세력이 정치에 투입되었고, 이는 곧 현종(玄宗)의 치세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필자는 본고를 통해서 관롱집단이 형성되는 과정과 당 초기의 정치적 상황을 차례로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측천무후의 집권과 함께 신흥세력으로 등장하는 북문학사(北門學士)에 대해 살펴보면서 무주혁명과 지배집단의 변화를 정리하고자 한다.
2. 관롱집단의 형성
관롱집단은 서위(西魏) 이래 관롱 지역의 호족과 한족 중 무력과 재지를 갖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관롱집단의 출현은 북위(北魏)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를 옮기며 한화정책을 실시한 효문제(孝文帝)에 의해 북방 변경 군진의 병사들은 관료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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