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 최초 등록일
- 2023.12.24
- 최종 저작일
-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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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2. 대원군 시기 관제의 정비
3. 서양함대의 출몰
4.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
5.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6. 척화비 건립
본문내용
세도정치 시기의 마지막 왕인 철종의 뒤를 이어 고종이 12세라는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군 이하응이 대원군이 되어 정치적 실권을 잡게 되는데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은 고종을 대신하여 과감한 개혁정치를 펼치게 됩니다.
고종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를 당시 안으로는 외척의 세도에 의한 국정의 혼란이 심각하였고요 삼정의 문란에 의한 민생의 파탄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밖으로는 서양 세력이 중국과 일본의 문호를 개방시키고 조선으로 몰려오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대원군은 외척의 세도를 제거하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 정책을 펼쳤고요 추락된 왕권을 회복하려는 왕권 강화 정책을 추구하였습니다.
대원군은 대외적으로는 외세의 침투를 물리치기 위해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쇄국 정책을 펼쳤습니다.
대원군은 권세를 누려 온 안동 김씨 일족을 밀어 내었고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였습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군 이하응은 붕당 정치와 세도 정치의 폐단을 제거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였습니다.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대원군은 서원철폐령을 내렸는데요 서원은 국가 재정을 좀먹고, 붕당의 근거지라고 여겼습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군 이하응은 백성을 수탈해 온 서원을 대폭 정리하여 47개소만을 남겼습니다.
백성을 수탈해 온 서원을 대폭 정리하면서 서원에 딸린 전지와 노비를 줄였고요 양반층의 경제력을 약화시켜 국가의 재정적 기초를 확보하였습니다.
대원군은 실추된 왕실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후 사용을 하지 않던 경복궁을 다시 중건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후 사용을 하지 않던 경복궁을 다시 중건하면서 대원군은 원납전을 강제로 징수하였고요 당백전을 남발하여 경제적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