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와 쇄국정책
- 최초 등록일
- 2016.05.19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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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흥선대원군의 생애
2.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
3.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4. 흥선대원군의 역사적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1. 흥선대원군의 생애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조선 말기의 왕족이요 정치가로,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아버지이다. 우리에게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대원군이란 왕이 왕위를 이을 자손이 없이 죽어,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승할 경우에 그 왕의 친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는 1863년 철종 임금이 돌아가자, 당시 12세이던 친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고, 어린 왕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실질적으로 국가정책을 펴 나갔다.
이렇게 자신의 아들을 왕에 오르게 하고 스스로 왕의 모든 권한을 위임 받은 그였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 온 어려움에 대한 일화는 수없이 많다. 12세 때에 어머니를 여의고 17세 때에는 아버지를 여읜 불우한 왕손으로 청년기를 보낸 그는,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 아래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음을 개탄하면서, 그 당시 왕손의 행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갖가지 괴기한 행동으로 인하여 조소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그는 양반 가문을 찾아다니며 구걸을 서슴지 않아서, ‘궁도령’(宮道令)이니 ‘상가의 망나니’라고 불릴 정도로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의도된 것으로 , 그는 서민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들의 생활을 체험하였으며, 백성의 여망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도 있었다.
그는 키가 작았으나 호탕한 성격과 의협심이 많은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미국인 헐버트(Hullbert, Homer B, 1863~1949)는 “그는 한국 정계에 나타난 최후의 실력자였고, 성격이 호탕하고 쾌활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는 왕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세도 정치를 없애고, 안으로는 땅에 떨어진 권위를 강화하고, 밖으로는 끊임없이 침입해 오는 외세에 대적할 실력을 키워 조선을 발전시킬 과감한 혁신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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