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상] 정치가로서 면암 최익현의 평가
- 최초 등록일
- 2004.06.16
- 최종 저작일
- 2004.06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정성을 드려 썼습니다.
정치가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서
특히 신경썼습니다.
참고하실만 할거예요.
목차
ㅁ서론
면암 최익현을 선택한 이유
ㅁ본론
1. 면암 최익현의 위정척사론과 의병운동
가. 사상의 성립배경
나. 위정척사론의 전개와 발전
다. 위정척사론의 현실화 - 의병운동
2. 정치가로서의 면암의 평가
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나. 면암에 대한 평가
1) 권력의 측면에서
2) 이념의 측면에서
3) 결과의 측면에서
4) 도덕의 측면에서
3.오늘날에 주는 의미
결 론
진정한 보수로서의 정치가 면암
본문내용
최익현의 강의를 들으면서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마지막까지 남아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아시아의 마지막 중화제국으로서의 조선이란 국가를 자신의 품에 안고 죽은'이라는 교수님의 말처럼 그는 조선이란 배의 침몰과 함께 한 선장 역할을 한 것이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이 레포트를 쓰기 전까지는 '위정척사파'라면 조선의 식민지화를 이끈 장본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조선의 근대화 실패와 일제에의 강점은 19세기까지 우리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구조의 결과였을 뿐이다. 다만 그런 서세동점의 시대에 최익현은 주자학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동아시아 문명의 마지막을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주어진 길을 걸었던 것이다.
정말 고리타분하게도 그는 마지막까지 주자학의 관점에서 "국가의 흥망성쇠의 근본은 전하의 마음 하나에 달려있다"고 얘기한다. 이것은 그 이전의 송시열이나 조광조 등의 주자학자가 말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아마도 그는 조선의 멸망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의 거리낌없이 자기의 생을 다 바쳐서 주자학의 이데올로기를 굳건히 지키고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다.
비록 최익현에게 유교적 신념에 따른 화이론적 세계관이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당시 서양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시대변화에 따른 위기적 상황의 현실을 깊이 통찰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여 조국을 제국열강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논리를 찾아가고 있다. 또한 그는 마지막까지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때로는 현실을 반영하며,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참고 자료
○ 최익현, 『면암집(勉菴集)』 민족문화추진회, 1978
○ 오영섭, 『화서학파의 사상과 민족운동』 국학자료원, 1999
○ 이상익, 『서구의 충격과 근대 한국사상』한울아카데미, 1997
○ 최창규, 척사론과 그 성격,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 김석근, 『김옥균과 최익현 : 19세기말 개국(開國)을 바라보는 두 시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 그 밖에 부분참조
- 마키아벨리, 『로마사논고』
- 이현경, 한국인의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과 변화, 『정치적 현실주의 역사와 이론』 화평사, 2003